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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식사·패션사 자료 — 시대별 의복 변천

복식사·패션사 자료 — 시대별 의복 변천 일반 지식

1947년 파리,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데뷔 컬렉션이 끝나자 한 미국 에디터가 외쳤다 — "이건 완전히 새로운 룩이에요(New Look)." 좁은 어깨, 졸라맨 허리, 한 벌에 원단 수십 미터가 들어간 풍성한 미디 스커트. 전쟁기 내내 정부가 버튼 개수까지 규제하던 절약의 시대 직후에 나온 이 사치는 도발이었고, 그래서 정확히 시대를 갈랐다. 복식사를 읽는다는 건 이런 순간들을 잇는 일이다. 옷의 모양이 바뀐 자리에는 거의 항상 그 사회의 사건이 깔려 있다.

오늘 입는 옷의 대부분은 발명이 아니라 재해석이다. 발레코어는 1830년대 낭만주의 발레 의상에서, 고프코어는 1970년대 등산복에서, Y2K는 말 그대로 2000년이라는 한 연도에서 끌어온다. 그래서 트렌드를 날카롭게 읽으려면 그 원본이 어느 시대 무슨 상황에서 나왔는지를 알아야 한다. 노스탤지어 마케팅도, 빈티지 쇼핑도, 원본을 아는 사람에게만 정직하게 보인다.

복식사(服飾史)는 인류 복식 전반을 사회문화적으로 다루고, 패션사(Fashion History)는 18세기 이후 파리를 축으로 한 트렌드 시스템에 초점을 둔다. 실물 근거는 박물관에 있다 — 뉴욕 메트로폴리탄의 코스튬 인스티튜트(3만 점 이상 소장), 런던 빅토리아&앨버트, 파리 갈리에라, 서울 국립민속박물관. 이 글은 그 컬렉션과 학술 문헌이 공유하는 일반 지식을 시대순으로 정리한다.

1900년 전후 — 몸을 조이던 시대

세기 전환기의 실루엣은 옆에서 봤을 때 S자였다. 코르셋으로 허리를 극단까지 조이고 엉덩이에 패드를 넣어 만든 인공적인 곡선이다. 여성복은 곧 사회적 지위와 정숙함의 표시였고, 레이스·리본·자수가 드레스를 빈틈없이 덮었다. 이 시기를 연 인물이 찰스 프레데릭 워스(Charles Frederick Worth)다. 그는 파리에 최초의 오트쿠튀르 하우스를 세워, 옷 짓는 사람을 재단사에서 예술가로 끌어올렸다. 디자이너에게 이름값이 붙기 시작한 출발점이다.

1910~1920년대 — 코르셋이 풀리고 허리선이 사라지다

해방은 한 디자이너의 결정에서 시작됐다. 폴 푸아레(Paul Poiret)는 1910년대 초 코르셋을 버린 루즈한 실루엣을 내놓았다. 일본·중동에서 끌어온 드레이퍼리, 하렘 팬츠, 과감한 색이 그의 서명이었다. 여기에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이 결정타를 날렸다. 여성들이 공장과 사무실에 투입되자 움직일 수 있는 옷이 필요해졌고, 발목까지 끌리던 스커트 밑단이 무릎 쪽으로 올라왔다. 옷의 변화가 노동의 변화를 그대로 따라간 것이다.

1920년대의 주인공은 허리선을 아예 지운 직선형 플래퍼 드레스였다. 단발 보브 컷, 무릎 길이 스커트, 발목까지 늘어뜨린 진주 목걸이가 재즈 시대의 새 여성상을 그렸다. 이 시대를 끌고 간 사람이 가브리엘 코코 샤넬(Gabrielle "Coco" Chanel)이다. 그는 운동복 소재이던 저지(jersey)를 여성복에 들였고, 1926년 리틀 블랙 드레스(LBD)라는 개념을 못 박았으며, 진짜 보석 대신 인조 주얼리를 패션으로 만들었다. 카디건 수트도 그의 손에서 나왔다 — 가디건이 격식의 영역으로 들어온 사건이다.

1930~1940년대 — 대각선 재단, 그리고 전쟁

1930년대의 결정적 기술은 마들렌 비오네(Madeleine Vionnet)가 발전시킨 바이어스 컷(Bias Cut)이다. 원단을 직선이 아니라 45도 대각선으로 재단하면 천이 몸에 유체처럼 흘러내린다. 코르셋 없이도 곡선을 그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같은 시기 할리우드 황금기는 글래머의 이미지를 전 세계에 송출했고, 마를렌 디트리히와 오드리 헵번의 스타일이 대중의 레퍼런스가 됐다. 대공황(1929~1939)의 그늘에서 장식은 줄고 라인은 우아해졌다 — 돈이 없을수록 옷은 단정해진다는 오래된 법칙이다.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은 옷을 다시 규제 안에 가뒀다. 영국·미국의 유틸리티 패션은 원단 사용량은 물론 주름과 버튼 개수까지 법으로 정했다. 그 억눌림의 반작용으로 1947년 디오르의 뉴룩이 터졌다. 절약을 외치던 언론과 여성단체가 "이 낭비를 보라"며 반발했지만, 디오르의 실루엣은 결국 1950년대 전체를 규정했다. 절제와 사치는 늘 시소처럼 움직인다.

1950~1960년대 — 청년이 처음으로 다르게 입다

1950년대는 두 흐름이 갈라진 시기다. 한쪽에서는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건축적 테일러링과 위베르 드 지방시의 우아함이 파리 모드의 정점을 찍었다. 다른 한쪽, 미국에서는 록큰롤이 터지며 처음으로 기성세대와 다르게 입는 청년이 등장했다. 리바이스 청바지에 흰 티셔츠, 오토바이 재킷 — 말론 브란도와 제임스 딘이 입자 그건 옷이 아니라 반항의 언어가 됐다(가죽 재킷, 티셔츠). 패션의 권력이 파리 살롱에서 거리의 십대에게로 처음 새기 시작한 지점이다.

1960년대에 그 흐름이 폭발했다. 메리 퀀트(Mary Quant)는 런던 킹스 로드에서 미니스커트를 대중화했고 — 같은 시기 파리의 앙드레 쿠레쥬도 기하학적 미니 룩을 내놨다 — 짧아진 치마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여성 해방의 깃발이었다. 런던 카나비 스트리트의 모즈(Mods)는 체크 수트와 첼시 부츠로 비틀즈·롤링스톤스의 무대를 채웠고(첼시 부츠), 베트남전 반전 운동과 맞물린 히피는 벨보텀과 크로셰, 인도·아프리카 자수로 반문화를 입었다(보헤미안). 한 시대 안에 정반대 두 미학이 공존한 첫 사례다.

1970~1980년대 — 청바지의 대중화와 과시의 시대

1970년대의 핵심어는 다원화다. 히피의 잔재인 보헤미안 룩이 이어지는 동안 디스코 문화가 반짝이 소재와 와이드 라펠, 플레어 팬츠, 플랫폼 슈즈로 스튜디오 54를 채웠다. 이 시기 가장 멀리 간 변화는 청바지다. 캘빈 클라인과 글로리아 반더빌트의 디자이너 진이 작업복이던 데님을 고급 패션으로 끌어올리며, 청바지는 계층·성별을 넘어 모두의 옷이 됐다(와이드 데님). 데이비드 보위가 끌고 간 글램 록은 화장과 의상에서 젠더의 경계를 흐렸다 — 오늘의 젠더리스 논의가 이때 한 번 예고된 셈이다.

1980년대는 경제 호황이 옷에 그대로 새겨진 시대다. 직장에서 권한을 확장한 여성들의 파워 드레싱은 넓은 어깨 패딩과 샤프한 수트로 표현됐다. 레이건의 미국과 대처의 영국이 만든 풍요는 선명한 원색, 메탈릭 소재, 큰 로고로 흘러넘쳤고, 아르마니 수트와 베르사체의 황금빛 프린트가 그 정점에 있었다. 동시에 Nike(나이키)Adidas(아디다스)가 운동장 밖으로 나와 일상복이 됐고, 뉴욕 힙합 씬에서는 아디다스 트랙수트와 골드 체인이 스타일의 문법으로 굳었다. 스포츠웨어와 스트리트가 패션의 정식 회원이 된 순간이다.

1990~2000년대 — 미니멀과 그런지, 그리고 Y2K

1990년대는 두 극단이 한 시대에 동거했다. 한쪽엔 헬무트 랭과 질 샌더의 미니멀리즘이 있었다 — 장식을 다 떼고 핏과 소재만 남긴 절제(미니멀). 정반대편엔 시애틀에서 올라온 그런지가 찢어진 진과 플란넬 셔츠, 닥터 마틴으로 "신경 안 쓴 척"을 입었고 쿠르트 코베인이 그 얼굴이 됐다(그런지). 그 사이로 힙합의 오버사이즈 실루엣이 주류로 들어왔고, 마틴 마르지엘라와 레이 가와쿠보의 해체주의가 패션을 지적 담론으로 끌어올렸다(아방가르드).

2000년대는 밀레니엄의 낙관이 옷에 묻은 시대다. Y2K 미학은 로라이즈 팬츠와 드러낸 허리, 메탈릭·비닐 소재, 나비 장식으로 브리트니 스피어스 세대를 입혔다(Y2K). 동시에 시에나 밀러와 케이트 모스가 끌고 간 보헤미안 시크는 레이어드 스커트와 유즈드 데님으로 여름 페스티벌 룩의 원형을 만들었다(보헤미안). 구찌·프라다·루이비통의 IT백 열풍과 로고마니아도 이 시기다 — 로고를 드러내는 게 곧 럭셔리이던, 지금과는 정반대 감각의 시대였다.

2010~2020년대 — SNS, 스트리트 럭셔리, 코어 미학

2010년 인스타그램의 등장이 패션 미디어의 문법을 통째로 바꿨다. 에디터의 지면 대신 인플루언서의 피드가 트렌드를 만들고, 사이클이 계절 단위에서 주 단위로 빨라졌다. 이 시기 가장 큰 사건은 거리와 명품의 결합이다. 버질 아블로의 오프-화이트, 그리고 2017년 Supreme(슈프림)과 루이비통의 협업은 "스트리트웨어가 럭셔리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매출로 답했다. 동시에 Patagonia(파타고니아)·Arc'teryx(아크테릭스) 같은 등산 브랜드가 도심으로 내려온 고프코어가 자리 잡았다(놈코어, 고프코어).

2020년대는 정체성을 해시태그로 입는 시대다. 코티지코어·발레코어·올드머니처럼 "#OOOcore"로 묶이는 마이크로 트렌드가 한 화면 안에 수십 개씩 공존한다(코티지코어, 발레코어, 올드머니·콰이어트 럭셔리). Z세대의 노스탤지어가 Y2K를 다시 끌어올렸고, 성별 이분법을 넘는 젠더리스 디자인이 담론의 중심에 섰다. 그리고 패스트패션을 향한 윤리적 비판이 커지며 디팝·빈티지 숍 중심의 세컨핸드 시장이 폭발했다 — 적게 사고 오래 입는 캡슐 옷장 같은 접근이 취향을 넘어 태도가 된 배경이다.

한국 복식사 — 한복에서 K-패션까지

한복의 기본 구조는 저고리에 치마 또는 바지로, 삼국시대부터 이어졌다. 조선(13921910)에서는 유교 예법이 색과 소재에 엄격한 위계를 매겼다 — 서민의 기본은 흰옷이었지만 관복과 예복에는 홍·청·황이 쓰였다. 개화기와 일제강점기(1880년대1945)에는 서양복이 밀려들며 한복과 양복이 뒤섞였고, 기생과 여학생을 중심으로 개량 한복과 신식 교복이 퍼졌다.

해방 후에는 미군 문화를 통해 청바지·티셔츠·점퍼가 대중화됐고, 1960~70년대 경제개발과 함께 섬유·의류 산업이 컸다. 1980년대 첫 패션 위크로 산업 체계가 잡힌 뒤, 1990년대 이후 이태원·홍대·가로수길이 스트리트 패션의 거점이 됐다. 무신사가 2001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출발해 국내 최대 패션 플랫폼으로 성장했고, K팝 아이돌의 무대의상이 글로벌 트렌드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도 이 흐름 위에 있다.

복식사가 트렌드 읽기에 주는 것

이 글이 다루는 건 결국 하나의 질문이다 — 지금 입는 옷이 어디서 왔는가. 레트로와 빈티지가 막연한 "옛날 느낌"이 아니라 특정 연도, 특정 사건의 재해석임을 알면 레트로·빈티지 같은 스타일을 고를 때 안목이 달라진다. 트렌치코트의 D링이 군장구용이었다는 사실 하나가 그 옷을 보는 눈을 바꾸듯, 복식사는 옷에 깔린 맥락을 돌려준다(트렌치코트, 패션 전문 용어 사전).

출처

  • Valerie Steele (ed.), Encyclopedia of Clothing and Fashion, Thomson Gale, 2005
  • Anne Hollander, Sex and Suits: The Evolution of Modern Dress, Knopf, 1994
  • Caroline Evans, Fashion at the Edge, Yale University Press, 2003
  • 조효숙·이은주, 《한국 복식의 역사》, 민속원, 2019
  • 임영자, 《한국복식문화사》, 학연사, 2004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복식 2000년》, 국립민속박물관, 2001
  • Joanne Entwistle, The Fashioned Body: Fashion, Dress and Modern Social Theory, Polity Press,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