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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전문 용어 사전

패션 전문 용어 사전 — 의류·소재·스타일 정의

"슬림 핏"이 무슨 뜻이냐고 물으면 대부분 "몸에 붙는 것"이라고 답한다. 틀린 건 아니지만, 그 답은 슬림 핏을 바디 핏·레귤러 핏과 구별해주지 못한다. 좋은 사전은 단어의 번역어를 주는 게 아니라 그 단어가 다른 단어와 어디서 갈라지는지를 준다. 슬림 핏은 바디 핏처럼 곡선을 그대로 드러내지는 않되 레귤러보다 여유가 적은, 스펙트럼 위의 한 좌표다. 좌표를 모르면 제품 설명의 "릴랙스드 테이퍼드 핏" 같은 표현은 그냥 분위기 단어로 흩어진다.

이 문서는 그렇게 헷갈리는 핵심 어휘를 핏·소재·스타일·디테일·산업의 다섯 갈래로 정리한다. 의류학 교재, 파슨스·런던 칼리지 오브 패션 같은 교육기관의 표준 정의, 그리고 한국섬유산업연합회와 한국의류학회가 관리하는 한국어 표준 번역어를 바탕으로 한다.

핏과 실루엣 — 몸과 옷 사이의 거리

핏은 결국 몸과 옷 사이에 공기가 얼마나 들어가느냐의 문제다. 가장 적은 쪽이 바디 핏, 가장 많은 쪽이 오버사이즈다. 이 거리를 한 줄로 줄 세우면 정보가 죽기 때문에, 여기서만큼은 표가 산문을 이긴다.

용어정의대표 아이템
바디 핏 (Body Fit)신체 곡선을 그대로 드러내는 가장 타이트한 핏스트레치 진, 보디수트
슬림 핏 (Slim Fit)몸에 붙되 움직임을 허용하는 핏슬림 슬랙스, 슬림 셔츠
레귤러 핏 (Regular Fit)과한 여유 없이 표준 체형 기준으로 제작된 핏기본 치노, 옥스퍼드 셔츠
릴랙스드 핏 (Relaxed Fit)레귤러보다 여유량이 많아 편안한 핏릴랙스드 데님
오버사이즈 핏 (Oversized Fit)의도적으로 크게 입거나 큰 사이즈를 택하는 스타일링오버사이즈 후디, 빅 블레이저

실루엣은 옷이 만드는 전체 형태를 알파벳에 빗댄 약속이다. 허리에서 밑단으로 퍼지는 삼각형이 A라인으로, 치마와 코트에서 허리를 강조하고 하체를 가린다(비율 밸런스). 위아래 폭이 일정한 직선이 H라인, 어깨가 넓고 아래로 좁아지는 게 Y라인이다 — 어깨 패딩 재킷에 스키니를 받친 조합이 전형적인 Y라인이다. 전체가 둥글게 부푼 코쿤 코트가 O라인이고, 어깨와 힙은 넓고 허리는 잘록한 모래시계가 X라인 — 테일러드 수트가 이상으로 삼는 형태다(실루엣).

넥라인과 소매는 이름만 알면 끝나는 영역이다. 목을 둥글게 감싸는 기본형이 크루넥, 그보다 깊고 넓게 판 게 스쿱넥이다. V넥은 목선을 길어 보이게 하고, 각진 사각이 스퀘어넥, 목을 다 감싸 접혀 올라오면 터틀넥(터틀넥·목폴라), 그보다 낮고 짧은 스탠드 칼라가 모크넥이다. 소매에서는 진동 둘레에 따로 봉합되는 셋인 슬리브가 가장 흔하고, 어깨 솔기 없이 목선까지 이어져 잘 움직이는 래글런, 소매와 몸판이 한 장으로 붙어 박쥐처럼 넓게 떨어지는 돌먼이 대표적이다. 어깨를 부풀린 퍼프 슬리브와 소매 끝을 개더로 모은 비숍 슬리브는 형태로 분위기를 만드는 쪽이다.

소재와 직조 — 같은 실, 다른 짜임

소재 이름이 헷갈리는 진짜 이유는 같은 실로 다르게 짜면 전혀 다른 천이 되기 때문이다. 직조 방식은 천의 성격을 결정하는 첫 변수다.

용어설명대표 소재
평직 (Plain Weave)경사·위사가 1:1로 교차하는 가장 기본 짜임. 균일하고 튼튼함옥스퍼드 클로스, 캔버스
능직 (Twill Weave)사선 줄무늬가 생기는 짜임. 내구성·드레이프 우수데님, 개버딘, 치노
수자직 (Satin Weave)실이 길게 떠서 광택면을 만드는 짜임새틴, 실크 새틴
파일직 (Pile Weave)표면에 루프나 컷 파일을 세우는 짜임벨벳, 코듀로이, 타월지
편직 (Knit)실을 루프로 엮어 신축성을 내는 구조저지, 리브, 인터록

소재의 성격은 짜임 다음에 가공이 결정한다. 워싱은 완성된 옷에 세탁 처리를 가해 부드럽고 빈티지한 질감을 내는 공정으로 스톤 워싱·효소 워싱이 흔하고, 머서라이징은 면을 가성소다에 담가 광택과 염색성을 끌어올린다 — 광택 나는 면 셔츠가 그 결과다. 샌포라이징은 미리 수축시켜 세탁 후 줄어듦을 막는 기계적 가공이고, 바이오워시는 효소로 표면 잔털을 제거해 색을 선명하게 만든다.

소재 자체의 성질은 외워두면 옷을 사기 전에 망설일 일이 준다. 면은 흡습·통기가 좋고 피부 자극이 없는 대신 수축과 구김에 약하다(면(코튼)). 울은 보온이 탁월하고 자연 방수성이 있지만 드라이클리닝을 부른다(울(양모)). 실크는 광택과 드레이프가 최상인 대신 마찰과 열에 취약하고, 린넨은 흡습건조가 가장 빠른 대신 구김이 심하다(린넨(마)). 합성 쪽에서는 나일론이 강도와 내마모에서 앞서되 정전기와 열에 약하고(나일론), 폴리에스터는 형태 안정과 세탁 편의가 강점이지만 땀을 잘 못 내보낸다(폴리에스터). 텐셀/리오셀은 부드러운 드레이프와 친환경성으로 그 사이를 메운다(텐셀·리오셀).

스타일 장르 — 같은 옷도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

스타일 용어는 옷의 모양이 아니라 옷을 대하는 태도에 붙는 이름이다. 미니멀리즘은 장식을 최소화하고 중립색과 깔끔한 라인에 집중하는 철학이고(미니멀), 노멀코어는 의도적으로 평범하고 기능적인 옷을 고르는 2010년대 뉴욕발 태도다(놈코어). 정반대편의 아방가르드는 해체와 비례 왜곡, 소재 실험으로 기성 미학에 도전한다(아방가르드). 테일러드는 정장 맞춤 기법을 바탕으로 한 정밀하고 구조적인 옷을 가리킨다(클래식·테일러드).

제작 기법에서 온 용어도 있다. 드레이핑은 원단을 인체 위에 직접 올려 형태를 잡는 기법이자 천이 자연스럽게 늘어지는 성질을 함께 가리키고, 데보레는 이중 직물의 일부 섬유를 화학 처리로 녹여 패턴을 만드는 가공이다. 트롱프뢰유(trompe-l'œil)는 눈을 속이는 착시 프린트로, 실제로는 없는 레이어링이나 디테일을 평면에 그려 넣는다 — 단추 없는 카디건에 단추를 프린트한 옷이 그 예다.

디테일 — 칼라와 포켓이 격식을 정한다

같은 셔츠도 칼라 모양 하나로 격식이 달라진다. 칼라 끝이 뾰족한 포인트 칼라가 일반적이고(옥스포드 셔츠), 그 끝을 단추로 고정한 버튼다운 칼라는 옥스퍼드 셔츠에서 나와 가장 캐주얼한 쪽이다. 반대로 칼라 포인트 사이가 넓게 벌어진 스프레드 칼라는 넥타이 매듭을 넉넉히 받아 가장 격식 있다. 칼라 없이 스탠드밴드만 있는 밴드 칼라(만다린 칼라)는 미니멀한 인상을 주고, 윙팁 칼라는 끝이 위로 접혀 턱시도·예복에만 쓰인다.

재킷의 인상은 라펠에서 갈린다. V자 노치가 있는 노치드 라펠이 싱글 브레스티드 수트의 표준이고, 라펠 끝이 어깨 쪽으로 뾰족하게 치솟은 피크 라펠은 더블 브레스티드와 예복에 쓰여 더 격식 있다. 곡선으로 매끄럽게 이어지는 숄 라펠은 턱시도 전용에 가깝다. 포켓도 격식의 신호다 — 천을 겉면에 덧붙인 패치 포켓은 캐주얼하고, 슬릿에 띠를 덧댄 웰트 포켓과 덮개가 달린 플랩 포켓은 정장 재킷의 영역이다.

산업 용어 — 시즌과 컬렉션의 약속

패션 업계의 달력은 두 시즌으로 돈다. SS(Spring Summer)는 봄·여름, FW(Fall Winter)는 가을·겨울을 가리키되, 실제 매장 입고는 계절보다 앞선다 — FW 컬렉션 앞에 67월 입고되는 프리폴, SS와 FW 사이 121월 입고되는 리조트(크루즈)가 그 틈을 메운다. 옷의 제작 방식으로는 표준 사이즈로 대량 생산하는 기성복 RTW(Ready-to-Wear, 프레타포르테)와, 주문 맞춤복인 쿠튀르가 양 끝이다. 오트 쿠튀르는 파리 조합 인증을 받은 하우스만 칭할 수 있는 최고급 맞춤복을 뜻한다.

생산 현장의 용어도 알아두면 제품의 출처가 보인다. 하나의 기본 패턴을 여러 사이즈로 변환하는 작업이 그레이딩이고, 소재·스티치·치수·컬러를 다 담아 공장에 넘기는 설계도가 테크팩이다. 같은 디자인의 색 조합 하나하나를 컬러웨이라 부르고, 콜라보나 특정 테마로 소량만 내는 묶음을 캡슐 컬렉션이라 한다. 이런 용어들이 제품 페이지에 박혀 있을 때, 그 옷이 어떤 과정을 거쳐 나왔는지를 거꾸로 읽을 수 있다.

출처

  • 한국의류학회, 《의류학 용어 해설》, 2018
  • 임은혁 외, 《패션 디자인의 이해》, 교문사, 2020
  • Charlotte Mankey Calasibetta & Phyllis Tortora, Fairchild's Dictionary of Fashion, Fairchild Books, 2003
  • 한국섬유산업연합회(KOFOTI), 섬유·의류 산업 용어 데이터베이스 (공개 자료)
  • 서울패션위크 교육 자료, 패션 용어 표준 가이드
  • Susie Hodge, A Brief History of Fashion in 50 Objects, Aurum Press,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