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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Comme des Garçons(꼼데가르송)

Comme des Garçons(꼼데가르송) — 일본. 아방가르드·하트

붉은 하트 티셔츠 하나로 Comme des Garçons(꼼데가르송)을 안다고 생각하면, 이 브랜드의 9할을 모르는 것이다. 그 하트는 CDG PLAY라는 입문 라인의 얼굴일 뿐이고, 같은 이름 아래에는 신체를 일부러 비틀어 옷의 정의 자체를 흔드는 컬렉션이 따로 돈다. 꼼데가르송은 단일 브랜드가 아니라 라인의 군집이다. "꼼데 사고 싶다"는 말은 사실 "어느 꼼데냐"는 질문을 먼저 통과해야 한다.

이 글이 미는 입장 하나. 꼼데가르송에서 입문자가 가장 자주 하는 실수는 비싼 메인 라인부터 욕심내는 게 아니라, PLAY의 하트 로고를 메인 라인의 철학과 같은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둘은 디자이너도, 만든 목적도, 옷이 작동하는 방식도 다르다.

1981년 파리, "히로시마 시크"라는 모욕

레이 카와쿠보는 게이오대학에서 문학과 미학을 전공했다. 디자인 학교를 다닌 적이 없고, 섬유 회사에서 일하다 독학으로 옷을 만들기 시작해 1969년 도쿄에서 꼼데가르송을 열었다. 브랜드명은 프랑스어로 "소년들처럼". 여성복을 남성복의 어휘로 짓겠다는 선언이 이름에 이미 박혀 있었다.

분기점은 1981년 파리 데뷔다. 검정 일색, 비대칭, 일부러 찢고 구멍 낸 마감의 옷이 런웨이에 오르자 프랑스 언론은 "히로시마 시크"라고 조롱했다. 당시 파리 패션이 전제하던 것 — 옷은 몸을 더 아름답게 보이게 한다 — 을 카와쿠보가 정면으로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 조롱은 곧 재평가됐다. 서구 패션의 문법 바깥에서도 옷이 사유가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한 사건으로 남았고, 야마모토 요지와 함께 일본 디자이너를 파리의 중심에 세웠다.

블랙에 대한 카와쿠보의 시각이 여기서 나온다. 그에게 검정은 색이 빠진 상태가 아니라 모든 색을 삼킨 자세에 가깝다. 컬렉션 테마도 "미래의 소년", "신체가 옷이 되고 옷이 신체가 되는" 식의 추상이라, 시즌마다 사물보다 개념에서 출발한다. 인터뷰는 거의 하지 않고, 할 때도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옷이 말을 대신한다는 태도다.

살아 있는 디자이너의 무게를 보여주는 사실 하나.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코스튬 인스티튜트가 2017년 카와쿠보 단독 전시 Art of the In-Between을 열었는데, 생존 디자이너의 단독 전시는 1983년 이브 생 로랑 이후 처음이었다.

한 이름 아래 여러 세계 — 라인 읽는 법

CDG 그룹은 카와쿠보와 남편 에이드리언 요페가 이끄는 라인의 묶음이다. 각 라인은 별개의 세계관을 갖고, 가격도 무드도 따로 논다. 무엇을 살지 고민하기 전에 어느 라인이 지금 내 무드인지를 먼저 정하면 길을 잃지 않는다.

CDG PLAY는 가장 널리 알려진 입문 라인이다. 필리프 퐁수가 그린 눈동자 달린 붉은 하트가 흰 티셔츠·가디건·스니커즈에 얹힌 형태가 시그니처다. 메인 라인의 철학적 무게 대신 일상에서 가볍게 입게 만든 라인이라, 로고가 작아 "아는 사람만 아는" 포인트로 작동한다. 미니멀한 흰 티·검은 하의에 하트 하나만 얹어도 룩이 닫힌다(모노크롬 코디). 캠퍼스·대학생 데일리데일리 캐주얼에서 가장 부담 없이 들어가는 진입점이다.

그 반대편이 COMME des GARÇONS HOMME PLUS, 남성 메인 라인이다. 런웨이에서 가장 실험적인 제안이 나오는 곳으로, 어깨가 어긋난 비대칭 테일러링과 의도적으로 뒤튼 실루엣이 핵심이다. 여기서 블레이저 한 벌은 받쳐주는 옷이 아니라 룩 전체의 주인공이다. 그래서 메인 라인을 입을 땐 나머지를 극도로 비우는 게 규칙이다 — 실루엣이 이미 다 말하고 있어서, 거기에 뭘 더하면 충돌한다. 개성을 드러내는 파티·연말 모임 자리에서 진가가 난다.

NOIR는 올블랙 라인으로, 단색 안에서 오직 소재와 구조로만 변주한다. 다크한 무드를 한 톤으로 밀고 싶을 때 고스·고딕 쪽으로 닿는다. GIRL은 페미닌하되 한 번 비튼 라인이고, SHIRT는 스트라이프·페이즐리·체크를 꼼데 방식으로 재해석한 캐주얼 셔츠 중심이다. 그리고 Junya Watanabe(준야 와타나베) — 카와쿠보의 수제자가 자기 이름으로 운영하는 라인은 CDG 그룹에 속하지만 기능성 소재·패치워크·밀리터리 리워크라는 독립된 세계를 갖는다.

입문 동선은 대개 정해져 있다. PLAY 하트에서 시작해 일상에 한 점씩 얹다가, 실루엣과 개념에 끌리는 순간 HOMME PLUS와 메인으로 넘어간다. 거꾸로 메인부터 들이면 옷이 너무 세서 받쳐줄 옷장이 같이 무너진다.

도버 스트리트 마켓 — 매장이 작품이 될 때

2004년 런던 도버 스트리트에 연 콘셉트 스토어는 단순 편집숍이 아니다. 여러 디자이너 브랜드를 한 공간에 큐레이션하되, 진열 자체를 설치 예술처럼 구성한다. 지금은 뉴욕·도쿄·베이징·서울로 확장됐다. 옷을 파는 곳이 아니라 옷을 보여주는 방식까지 디자인하겠다는 카와쿠보의 태도가 공간으로 번진 결과다.

레퍼런스를 끌어오는 방향도 의도적이다. 카와쿠보는 서구 패션의 계보보다 동유럽·아시아·아프리카의 민속 의복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역시 서구 중심 패션 헤게모니에서 한 발 비켜서려는 거리두기로 읽힌다.

옆자리 디자이너들과 어디서 갈리나

꼼데의 위치는 "신체를 아름답게 보이는 옷"이라는 서구 전제를 거부한 계보 안에서 가장 또렷해진다. Maison Margiela(메종 마르지엘라)도 옷의 구조를 해체하지만 마르지엘라가 익명성과 재구성을 향한다면 꼼데는 반(反)아름다움과 철학으로 간다. 같은 해체라도 도착지가 다르다.

절제·중립 쪽인 Lemaire(르메르)·Our Legacy(아워레가시)는 소재 중심의 차분함으로 미니멀을 짠다 — 꼼데가 개념과 실험이라면 이쪽은 침묵에 가깝다. 블랙과 실루엣 실험에서 겹치는 Saint Laurent(생로랑)·Acne Studios(아크네 스튜디오)는 상업성과 개념 사이에서 꼼데보다 한참 상업 쪽에 선다. 같은 아방가르드 무드 안에서도 출발 철학이 다르다는 것 — 그 한 줄만 잡으면 비교가 단순해진다. 아방가르드 전반은 아방가르드, 블랙 다크 무드는 고스·고딕, 남녀 경계를 지우는 결은 젠더리스에서 더 판다.

출처

  • Metropolitan Museum of Art — Rei Kawakubo/Comme des Garçons: Art of the In-Between (2017 전시 카탈로그)
  • Kawamura, Yuniya. The Japanese Revolution in Paris Fashion. Berg Publishers, 2004.
  • BoF — Comme des Garçons 브랜드 프로필
  • 보그·GQ 매거진 — Comme des Garçons 컬렉션 리뷰 아카이브
  • 하입비스트 — CDG PLAY 및 협업 관련 기사
  • Dover Street Market 공식 웹사이트 (brand overview)

자주 묻는 질문

꼼데가르송은 어떤 브랜드인가요?

1969년 도쿄에서 레이 카와쿠보가 설립한 일본의 럭셔리 디자이너 브랜드입니다. 브랜드명은 프랑스어로 '소년들처럼(Like Boys)'을 뜻하며, 비대칭·블랙·해체·반(反)아름다움을 핵심 코드로 삼는 아방가르드 패션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꼼데가르송 하트 로고는 어떤 라인인가요?

눈동자가 달린 붉은 하트 로고는 가장 널리 알려진 라인 CDG PLAY의 시그니처입니다. 필리프 퐁수가 디자인했으며, 티셔츠·가디건·스니커즈 등 일상에서 입기 쉬운 아이템에 새겨져 브랜드 입문 라인 역할을 합니다.

꼼데가르송은 어떤 스타일에 어울리나요?

아방가르드, 젠더리스, 고딕 스타일과 자주 어울립니다. CDG PLAY 라인은 데일리·캠퍼스 무드에 쉽게 녹아들고, 메인 라인은 패션을 예술과 철학의 영역으로 탐구하는 사람에게 잘 맞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꼼데가르송은 어느 나라 브랜드인가요?

일본 브랜드입니다. 1969년 디자이너 레이 카와쿠보(Rei Kawakubo)가 도쿄에서 창립했습니다. 브랜드명 Comme des Garçons은 프랑스어로 "소년들처럼"을 뜻하며, 젠더 경계와 아방가르드 미학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꼼데가르송의 역사는 어떻게 되나요?

게이오대학에서 문학·미학을 전공한 레이 카와쿠보가 1969년 도쿄에서 Comme des Garçons(꼼데가르송)을 론칭했습니다. 1981년 파리 컬렉션 데뷔 당시 검정·비대칭·불완전한 마감의 옷이 "히로시마 시크"라 조롱받았으나, 서구 패션에 아시아 디자이너의 존재를 각인시킨 사건으로 재평가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