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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Saint Laurent(생로랑) — 파리의 록시크

Saint Laurent(생로랑) — 프랑스 럭셔리. 슬림 테일러링·록시크의 대명사

이 브랜드와 함께 보는 항목 · 3

Saint Laurent(생로랑)의 정체는 한 옷 안에서 서로 안 어울리는 두 가지를 충돌시키는 데 있다. 한쪽은 쿠튀르의 정교함 — 새틴 라펠과 칼처럼 떨어지는 어깨선. 다른 쪽은 록의 거칢 — 가죽, 지퍼, 어두운 무대. 보통 브랜드는 둘 중 하나를 고르는데, 생로랑은 둘을 같은 재킷 안에 가둔다. "조용한 럭셔리"를 찾는 사람에게 생로랑은 거의 항상 한 톤 시끄럽고, 바로 그 시끄러움이 정체성이다. 그러니 무난하게 두루 입을 명품을 원한다면 이 브랜드는 답이 아니다 — 생로랑은 한 점으로 분위기를 베어 내는 옷이다.

디올의 천재에서 자기 이름의 혁명가로

이브 생로랑(Yves Saint Laurent, 1936~2008)은 알제리 오랑에서 태어나 21세에 크리스챤 디올의 수석 디자이너가 됐다. 1961년 연인이자 사업 파트너였던 피에르 베르제(Pierre Bergé)와 자기 이름을 딴 브랜드를 세웠고, 그의 가장 큰 혁신은 색이나 실루엣이 아니라 여성에게 남성복의 언어를 건넨 것이었다.

1966년의 르 스모킹(Le Smoking) — 여성을 위해 재단된 턱시도 수트 — 은 그 선언이다. 여성이 바지 정장으로 레스토랑에 들어가다 입장을 거절당하던 시대였다. 헬무트 뉴튼이 1975년 찍은, 르 스모킹을 입고 어두운 파리 골목에 선 여성의 사진은 패션사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이미지 중 하나가 됐다. 이브 생로랑은 같은 1960년대에 사파리 재킷(1968)으로 작업복을 하이패션으로 끌어올렸고, 1966년 파리 좌안에 리브 고쉬(Rive Gauche) 부티크를 열어 쿠튀르의 럭셔리를 기성복으로 내려보냈다 — 지금은 당연한 레디투웨어 럭셔리의 초기 모델이다.

록은 우연이 아니었다

생로랑이 록과 만난 건 마케팅이 아니라 인맥이었다. 이브 생로랑 본인이 1960~70년대 록 스타들과 가까웠고, 그들의 가죽 재킷·스키니·뾰족한 부츠가 쿠튀르 소재와 테일러링을 만나면서 록시크의 원형이 생겼다.

그 계보를 노골적으로 끌어올린 건 2012년 취임한 **에디 슬리만(Hedi Slimane)**이다. 그가 브랜드명을 Yves Saint Laurent에서 Saint Laurent으로 바꾸자 당시엔 논란이 컸지만, 슬리만은 L.A. 록 클럽 문화에서 캐스팅과 음악, 스키니 팬츠와 앵클 부츠를 끌어와 생로랑 쇼를 패션쇼보다 록 콘서트에 가깝게 만들었다. 2016년부터 브랜드를 이끄는 **앤서니 바카렐로(Anthony Vaccarello)**는 그 록시크 위에 더 날카로운 테일러링과 관능적 실루엣을 얹었다. 이브 생로랑의 쿠튀르 혁명, 1999~2004년 톰 포드의 글래머, 슬리만의 록 미학, 바카렐로의 다크 글래머 — 디렉터가 바뀌어도 "날 선 검정"이라는 축은 흔들리지 않았다.

검정·슬림·금속 — 록시크의 문법

생로랑 코디의 첫 번째 원칙은 비율이다. 슬림한 상의 + 슬림한 하의 + 슬림한 부츠가 만드는 한 줄의 수직선 — 어느 한 군데가 볼륨으로 부풀면 그 날렵함이 즉시 흐려진다. 가장 직접적인 표현은 지퍼와 금속 하드웨어가 박힌 슬림핏 바이커 레더 재킷(가죽 재킷)이고, 가장 오래된 시그니처는 새틴 라펠을 단 르 스모킹 재킷(블레이저)이다. 60년이 지난 지금도 매 시즌 쇼에 르 스모킹이 다시 걸린다.

발끝에선 첼시 부츠(첼시 부츠)가 슬리만 시대에 브랜드를 상징하는 슈즈가 됐다. 사이드 엘라스틱이 들어간 슬림 토 부츠를 스키니(스키니 진)와 붙이면 그 수직선이 완성된다. 가방은 작고 드레시한 쪽 — 체인 스트랩의 케이트, 다이아몬드 퀼팅의 루루가 야간·파티용이고, 구조적인 토트형 사크 드 쥬르가 낮의 포멀을 받친다(숄더백). 이 모든 것 위에 실버 톤 YSL 버클 벨트 하나만 채워도 코디 전체가 그 미학 쪽으로 기운다.

소재로 보면 생로랑은 가죽(가죽(레더))과 실크(실크(견))의 충돌이다. 부드러운 실크 블라우스에 날카로운 슬림 팬츠를 받치는 대비가 생로랑 여성복의 핵심 문장이고, 블랙 온 블랙으로 갈수록 그 강도는 올라간다(모노크롬 팔레트).

풀착장보다 한 점

생로랑 미학은 전신을 다 두르는 것보다 한 점만 정확히 두는 쪽이 더 세련되게 읽힌다. 록시크의 인상이 워낙 강해서, 검정의 면적이 넓어질수록 강도가 그대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파티·연말 모임에선 새틴·레더 아우터나 슬림 수트를 풀 강도로 밀어야 한다 — 야간엔 블랙 온 블랙이 정답에 가깝다. 데이트룩에선 테일러드 재킷이나 레더 재킷을 한 점만 두고 이너는 흰 티로 단순하게 비운다. 옷보다 사람이 먼저 보여야 한다. 보수적이지 않은 크리에이티브 출근·오피스룩라면 샤프한 블레이저와 구조적 숄더백 정도가 상한선이고, 일반 오피스에선 검정 비중을 줄이고 첼시 부츠 같은 실루엣 요소만 차용하는 편이 자연스럽다. 격식 매칭은 드레스코드 해석, 비율 설계는 비율 밸런스에서 더 판다.

같은 하이엔드, 다른 좌표

생로랑은 케링 그룹의 핵심 럭셔리지만 같은 하이엔드 안에서도 미학적 좌표는 뚜렷이 갈린다. 로고 없는 조용한 럭셔리를 원하면 인트레치아토의 Bottega Veneta(보테가 베네타) — 더 부드러운 실루엣과 절제된 무드다. 회색 수트와 크롭 테일러링의 학구적 아이러니는 Thom Browne(톰 브라운)가, 접근성 높은 데일리 파리지앵은 AMI Paris(아미)가, 해체주의의 지적 전위는 Maison Margiela(메종 마르지엘라)가 가져간다.

생로랑이 이들과 갈리는 한 문장은 결국 "테일러링의 정교함과 록의 거칢을 한 옷 안에서 부딪힌다"는 것이다. 조용한 럭셔리를 원하면 보테가, 날 선 한 방을 원하면 생로랑. 어두운 무드 계보는 고스·고딕으로, 단정한 슬림 남성복은 댄디·클래식·테일러드로 이어지고, 슬리만 시대의 록 스트리트 연결은 스트리트에서 더 다룬다.

출처

자주 묻는 질문

Saint Laurent(생로랑)은 어떤 브랜드인가요?

Saint Laurent(생로랑)은 파리 패션이 만들 수 있는 가장 섹시하고 날선 스타일을 정의하는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입니다. 이브 생로랑이 1961년 피에르 베르제와 함께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창립했으며, 부드러운 실크와 날카로운 테일러링, 록의 에너지와 쿠튀르의 정교함이라는 모순적 조합이 핵심입니다.

르 스모킹과 록시크는 무엇인가요?

르 스모킹(Le Smoking, 1966)은 여성을 위해 디자인된 최초의 턱시도 수트로, 여성에게 남성복의 언어를 건넨 이브 생로랑의 대표적 혁신입니다. 록시크는 록의 에너지(반항·날 선 에지·어둠)를 럭셔리 테일러링의 언어로 번역한 미학으로, 슬림 실루엣·블랙의 지배·가죽·금속 하드웨어가 핵심 요소입니다.

Saint Laurent(생로랑) 이름은 왜 YSL에서 바뀌었나요?

2012년 케링 그룹 산하에서 에디 슬리만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취임하면서 브랜드 이름이 Yves Saint Laurent에서 Saint Laurent으로 바뀌었습니다. 당시 논란이었으나 슬리만은 브랜드를 록 음악·스키니 팬츠의 세계로 끌어들이며 새로운 세대의 팬층을 형성했고, 2016년부터는 앤서니 바카렐로가 이끌고 있습니다.

Saint Laurent(생로랑)은 어느 나라 브랜드인가요?

프랑스 브랜드입니다. 1961년 디자이너 이브 생로랑(Yves Saint Laurent)이 파트너 피에르 베르제와 함께 파리에서 창립했습니다. 르 스모킹·록시크 등 프랑스 하이패션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Saint Laurent(생로랑)의 역사는 어떻게 되나요?

알제리 출신의 이브 생로랑(1936~2008)이 21세에 크리스챤 디올 수석 디자이너를 거쳐 1961년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창립했습니다. 1966년 여성을 위한 턱시도 르 스모킹(Le Smoking)으로 여성복에 남성복의 언어를 도입했고, 2012년 에디 슬리만 취임과 함께 브랜드명이 Saint Laurent으로 바뀐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