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기원
젠더리스 역사
젠더리스 역사 — 성별을 지운 옷이 아니라 성별 전제를 의심해온 흐름, 1960년대 유니섹스에서 2020년대 일상까지
젠더리스는 옷에서 성별을 지우는 일이 아니다. 성별이 옷에 새겨져 있다는 전제 자체를 의심해온 흐름이다. 1960년대 유니섹스가 "남녀 모두 입을 수 있다"는 실용적 제안이었다면, 2020년대 젠더리스는 "애초에 남녀 구분이 왜 옷에 붙어야 하느냐"는 질문이다. 둘 사이에는 반세기가 넘는 디자인 실험과 사회적 이동이 켜켜이 쌓여 있다.
이 역사의 축은 단순하지 않다. 디자이너가 무대에서 던진 도발, 거리의 청년들이 일상으로 끌어내린 착장, 대중 브랜드가 생산 라인을 재편한 산업적 전환 — 세 갈래가 엇물리며 지금의 젠더리스가 만들어졌다. 젠더리스가 현재의 코디 문법을 다룬다면, 이 글은 그 문법이 어디서 왔는지를 추적한다.
유니섹스라는 첫 번째 질문: 1960~70년대
젠더리스의 전사(前史)는 '유니섹스'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1960년대 후반이다. 오스트리아 출신 디자이너 루디 게른라이히가 1970년 "남성과 여성을 위한 유니섹스 패션"이라는 문구로 컬렉션을 발표하며 이 개념을 산업 언어로 끌어들였다. 그의 디자인은 남녀 모델이 동일한 니트 원피스와 튜닉을 입는 방식이었다 — 지금 기준으로 보면 단순하지만, 당시로선 옷의 성별 귀속을 정면으로 거부한 선언이었다.
같은 시기 음악 무대에서는 더 직관적인 형태로 중성적 스타일이 퍼졌다. 데이비드 보위의 지기 스타더스트 페르소나는 글리터 메이크업과 유려한 점프수트로 남성복의 경계를 허물었고, 믹 재거는 무대 위에서 블라우스와 벨벳 팬츠를 입어 록 스타의 남성성을 다시 썼다. 이들은 디자이너가 아니었지만, 대중이 '남자 옷'이라고 믿던 것의 반대편을 수백만 명 앞에서 입어 보인 점에서 젠더리스의 문화적 기반을 닦은 셈이다.
하지만 이 시기 유니섹스의 한계도 분명했다. 대부분의 디자인은 결국 남성의 체형을 기준으로 제작됐고, '남녀 공용'이라는 말은 흔히 '여성도 입을 수 있는 남성복'을 뜻했다. 옷의 성별을 진짜로 해체하기보다, 한쪽 성별의 옷을 다른 쪽에 빌려주는 수준에 머문 것이다.
해체와 재구성: 1980~90년대
진짜 전환은 1980년대 일본 디자이너들에게서 온다. 꼼 데 가르송의 레이 가와쿠보와 요지 야마모토는 여성복에서 허리선과 가슴 라인을 없애고, 몸을 감추는 과장된 실루엣으로 서양 테일러링의 핵심 — 성별화된 신체를 드러내는 재단 — 을 해체했다. 이 옷들은 여성의 몸을 드러내지도, 남성의 몸을 모방하지도 않았다. 그냥 몸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했을 뿐이다. 1982년 파리 컬렉션에서 선보인 가와쿠보의 '레이스 니트'는 구멍 뚫린 스웨터였는데, 관객들은 이것이 여성복인지 남성복인지 분류할 수 없었다 — 그게 정확히 의도였다.
같은 시기 장 폴 고티에는 다른 경로로 같은 목적지에 도달했다. 그는 남성 모델에게 스커트를 입혀 런웨이에 세웠다.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아이템을 남성의 몸에 얹음으로써, '스커트=여성'이라는 등식을 무대 위에서 실물로 부정한 것이다. 고티에의 1985년 '남성을 위한 스커트'는 충격이었지만, 그 충격이 없었다면 30년 뒤 해리 스타일스의 보그 커버도 없었다.
이 시기 실험은 패션 인사이더의 영역에 머물렀지만, 옷의 구조 자체에 박힌 성별 전제를 무너뜨렸다는 점에서 이후 모든 젠더리스의 설계도가 됐다. 유니섹스가 "남자 옷을 여자에게"라는 수평 이동이었다면, 이들의 해체는 "남자 옷과 여자 옷이라는 범주 자체를 의심하라"는 수직 이동이었다.
대중화의 문턱: 2010년대
2010년대 들어 젠더리스는 런웨이를 넘어 매장으로 내려왔다. H&M이 2015년 '젠더 뉴트럴' 라인을 론칭했고, 자라가 '언젠더드(Ungendered)' 컬렉션을 내놓으며 대중 소비자가 젠더리스 옷을 살 수 있는 통로가 열렸다. 이 라인들은 대개 무채색 베이식 — 청바지, 후디, 티셔츠 — 에 집중됐고, 디자인보다 마케팅 언어가 앞섰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젠더리스를 '특별한 사람의 특별한 옷'에서 '누구나 입을 수 있는 선택지'로 내려놓은 전환점이었다.
같은 시기 한국에서는 아이돌 팬덤이 젠더리스의 확산을 떠받쳤다. 남성 아이돌의 크롭 톱, 여성 아이돌의 오버사이즈 수트는 팬덤 안에서 먼저 소비되고, 거리 패션으로 번졌다. 이 흐름은 2020년대 BTS의 퍼포먼스 의상과 해리 스타일스의 《보그》 커버 — 레이스 드레스를 입은 남성의 정면 사진 — 로 정점을 찍는다. 이제 젠더리스는 더 이상 패션쇼의 실험이 아니라, Z세대의 일상적 선택지가 됐다.
디자이너의 질문에서 모두의 옷장으로
반세기 동안 젠더리스는 한 번도 단일한 '트렌드'였던 적이 없다. 오히려 각 시대마다 다른 이름 — 유니섹스, 앤드로지너스, 젠더 플루이드, 언젠더드 — 으로 불리며, 디자이너와 뮤지션과 거리의 청년들이 각자 자기 방식으로 "왜 이 옷은 한쪽 성별에만 속하는가"를 물어온 궤적이다.
그 질문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차이는 이제 그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소수 디자이너가 아니라, 자기 옷장 앞에 선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출처
- 복식사·패션사 자료 — 1960~90년대 유니섹스·해체주의 디자이너의 컬렉션 전개와 산업적 맥락
- BoF — 2010년대 대중 브랜드의 젠더 뉴트럴 라인 론칭과 소비 시장 변화
- 위키피디아 패션 항목 — 유니섹스·젠더리스·앤드로지너스 개념의 정의와 용어 변천사
자주 묻는 질문
젠더리스 패션은 언제부터 시작됐나요?
1960년대 루디 게른라이히가 '유니섹스' 개념을 산업 언어로 끌어들이고, 데이비드 보위 같은 뮤지션이 무대에서 중성적 의상을 선보이면서 시작됐습니다. 이후 1980~90년대 일본 디자이너들이 실루엣의 성별 전제를 해체했고, 2010년대 들어 대중 브랜드의 젠더 뉴트럴 라인으로 확산됐습니다.
유니섹스와 젠더리스는 어떻게 다른가요?
유니섹스는 한 브랜드 안에 남성 제품과 여성 제품이 각각 존재하면서도 디자인을 공유하는 구조입니다. 젠더리스는 남성복·여성복이라는 구분 자체를 없애고, 같은 옷을 성별과 무관하게 입는 접근을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