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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벳 — 빛을 세로로 세운 직물

벨벳 — 짧은 파일을 세워 짠 깊은 광택의 드레시 직물. 겨울·파티

손바닥을 벨벳 위에 얹고 한 방향으로 쓸어 보면 면이 어두워지고, 반대로 쓸면 같은 천이 환해진다. 색이 변한 게 아니라 일어선 털이 빛을 받는 각도가 바뀐 것이다. 이 짧은 털 한 겹—파일(pile)—이 벨벳의 전부다. 실 두 겹을 위아래로 짠 뒤 사이를 칼로 갈라 단면을 세우면 수만 가닥의 털이 직립하고, 그 끝이 빛을 잘게 흩어 깊은 광택이 생긴다. 다른 천이 표면에 빛을 미끄러뜨린다면 벨벳은 빛을 안으로 빨아들였다가 각도가 맞는 순간 토해 낸다. 와인색 벨벳 재킷이 형광등 아래선 검정에 가깝다가 사람이 움직이는 순간 핏빛으로 살아나는 게 그 때문이다.

벨벳을 두고 흔히 "고급스러운 광택"이라고 뭉뚱그리는데, 정확히는 광택의 종류가 다르다. 실크(견) 새틴이 거울처럼 한 점에서 강하게 튀는 정반사라면, 벨벳은 파일 끝마다 빛이 갈라지는 난반사다. 그래서 벨벳은 번들거리지 않고 묵직하게 가라앉는다. 명도 대비가 천 안에서 그라데이션으로 흐르고, 같은 검정이라도 폴리에스터 무지 검정보다 훨씬 깊은 검정으로 읽힌다. 격식 있는 야간 자리에서 벨벳이 강한 건 이 깊이 때문이지 반짝임 때문이 아니다.

왕의 천이었던 시간

벨벳은 한동안 입는 사람을 곧바로 신분으로 번역하는 천이었다. 파일을 세우려면 실을 두 배로 쓰고 그걸 일일이 갈라야 했으니, 기계가 없던 시절엔 어마어마하게 비쌌다. 14세기 이탈리아 제노바와 베네치아가 실크벨벳 직조의 중심이었고, 르네상스 군주와 추기경의 초상화에 등장하는 짙은 진홍·자줏빛 옷감이 대부분 이 실크벨벳이다. 자주색 염료 자체가 귀했던 데다 그걸 벨벳에 올렸으니, 그림 속 한 벌의 가격은 지금 감각으로 집 한 채에 가까웠다.

19세기 산업혁명이 직조기를 들이면서 면벨벳이 대량으로 풀렸고, 천은 궁정에서 거실 커튼과 극장 좌석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벨벳=특별한 자리"라는 감각은 끈질기게 남았다. 20세기 들어 디자이너들이 이 잔상을 가져다 썼는데, 1966년 이브 생 로랑이 '르 스모킹'을 내놓으며 여성용 턱시도를 제안했을 때 벨벳 버전이 핵심 라인이었고, 1970년대 글램 록 무대에서 데이비드 보위가 두른 벨벳 슈트가 화려한 야간성을 다시 끌어올렸다. 지금 벨벳 블레이저가 주는 약간의 무대감·연말감은 이 계보의 흔적이다.

골덴과 헷갈리지 않으려면

벨벳을 설명할 때 가장 자주 끌려 나오는 게 코듀로이, 한국에서 흔히 골덴이라 부르는 천이다. 둘은 친척이 맞다. 표면에 파일을 세운다는 원리가 같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다른 건 그 파일을 어떻게 배치하느냐다.

코듀로이는 파일을 세로 골(웨일)로 줄지어 묶고 골과 골 사이를 비워 둔다. 그래서 손끝에 도드라지는 이랑이 잡히고, 골 사이 바닥은 빛을 받지 않아 매트하게 패인다. 멀리서 보면 가는 줄무늬가 깔린다. 반면 벨벳은 파일을 면 전체에 빈틈없이 깔아 골이 없다. 표면이 한 덩어리로 매끈하고, 광택이 줄로 끊기지 않고 천 전체로 번진다. 한마디로 코듀로이는 "골이 보이는" 천이고 벨벳은 "골이 사라진" 천이다.

쓰임도 갈린다. 코듀로이는 면 특유의 매트함과 골의 캐주얼함 덕에 낮·복고·데일리로 입고, 벨벳은 빛을 머금는 깊이 덕에 밤·드레시·격식으로 입는다. 같은 와인색이라도 코듀로이 팬츠는 캠퍼스로 가고 벨벳 팬츠는 연말 파티로 간다. 옷을 고를 때 표면에 손끝이 걸리는 이랑이 있으면 코듀로이, 손이 미끄러지듯 한 면으로 흐르면 벨벳이라고 보면 거의 틀리지 않는다.

벨벳 안에서도 갈래가 있다. 면벨벳(코튼 벨벳)은 매트하고 묵직해 재킷·팬츠에 쓰이고, 실크벨벳은 얇고 드레이프가 흐르듯 떨어져 드레스에 쓰인다. 비스코스나 실크에 짠 벨벳을 한 방향으로만 파일을 눕혀 광택을 극단으로 끌어올린 게 '벨루어'와 '판벨벳(crushed velvet)' 계열인데, 판벨벳은 일부러 파일을 사방으로 짓눌러 얼룩덜룩한 광택을 낸 천이라 빛 반사가 불규칙하다. 입문자가 무난하게 시작하기엔 매트한 면벨벳 블레이저가 실패 확률이 낮고, 판벨벳은 광택이 세서 잘못 입으면 무대의상처럼 튄다.

겨울밤에 강하고 한낮에 약하다

벨벳의 무대는 늦가을에서 겨울, 그것도 해가 진 뒤다. 이유는 단순하다. 파일이 빛을 머금는 천이라 광원이 강하고 분산된 한낮 야외에선 그 깊이가 평평하게 날아간다. 정오의 직사광 아래 벨벳 재킷은 그냥 어두운 천 한 장처럼 보인다. 반대로 실내 조명·간접광·촛불처럼 광원이 점으로 떨어지는 환경에선 파일의 명암이 살아나며 색이 입체적으로 깊어진다. 그래서 벨벳은 연말 디너, 호텔 로비, 공연장, 저녁 파티·연말 모임 자리에서 빛난다.

계절감은 두께가 결정한다. 보온성이 있는 면벨벳·실크벨벳 재킷과 팬츠는 11월부터 1월이 본 무대이고, 같은 천으로 만든 벨벳 원피스는 연말 하객·송년 모임에서 가장 자주 보인다. 다만 얇은 스트레치 벨벳 톱이나 벨벳 셔츠는 다르다. 실내 위주라면 환절기에도 입을 수 있고, 오히려 한겨울엔 단독으로 춥다. 두께를 보지 않고 "벨벳=겨울"로만 묶으면 얇은 벨벳 톱을 12월 야외에 입고 떠는 실수가 나온다.

여름은 거의 금기다. 파일이 공기를 가두는 구조라 통기가 막히고 땀이 마르지 않는다. 게다가 벨벳은 땀과 물에 약해, 더운 계절에 입으면 관리 부담이 두 배로 는다. 봄가을 환절기에 얇은 벨벳을 실내용으로 쓰는 정도가 한계다.

한 벌이면 충분한 강도

벨벳을 처음 들이는 사람에게 가장 흔한 실패는 욕심이다. 깊은 광택과 격식 분위기가 좋아서 위아래를 다 벨벳으로 두르면, 빛을 머금는 면적이 너무 넓어져 옷이 사람보다 먼저 말을 건다. 무대의상과 일상복의 경계는 거기서 갈린다. 규칙은 간단하다. 한 룩에 벨벳은 한 점, 나머지는 매트한 천으로 받친다.

가장 안전한 한 점은 벨벳 블레이저다. 짙은 네이비나 보틀그린 면벨벳 블레이저 하나에, 안에는 매트한 흰 셔츠나 얇은 니트, 아래는 매끈한 울 슬랙스를 받친다. 이러면 벨벳의 광택이 상반신 한 곳에만 모여 야간 격식이 잡히고, 받쳐 입은 매트한 천이 그 광택을 차분하게 눌러 준다. 송년회·결혼식 하객석 둘째 줄·연말 디너 어디든 통하는 조합이다. 신발은 광택이 또 겹치지 않게 스웨이드 로퍼나 매트한 더비가 낫고, 에나멜 구두를 함께 신으면 빛이 두 군데서 튀어 과해진다.

벨벳 드레스는 그 자체로 룩을 완성하는 강한 한 점이다. 와인·딥그린·잉크블랙 같은 겨울 쿨 계열 벨벳 원피스는 별다른 장신구 없이도 깊이가 채워지니, 액세서리는 작은 진주 귀걸이 하나 정도로 멈추는 게 낫다. 여기에 금속 광택의 큰 주얼리까지 더하면 빛이 사방에서 부딪힌다. 겉옷을 얹어야 한다면 벨벳 위에 또 벨벳을 겹치지 말고, 매트한 울 코트나 캐멀 코트로 덮어 광택을 한 군데로 가둔다.

색은 깊은 톤일수록 벨벳의 성질과 맞는다. 와인, 보틀그린, 잉크블루, 잉크블랙, 자줏빛 — 이런 짙은 색이 파일의 명암 그라데이션과 결을 같이한다. 반대로 밝은 파스텔이나 형광은 벨벳의 깊이를 못 살리고 천만 번들거려 추천하지 않는다. 밝게 가려면 차라리 실크(견)나 새틴이 맞는 천이지 벨벳은 아니다.

물 한 방울이 자국으로 남는다

벨벳을 망치는 건 시간이 아니라 순간이다. 가장 흔한 사고 두 가지가 눌림과 물자국인데, 둘 다 파일이 한 번 쓰러지면 그 자리에 그림자가 박힌다는 같은 원리에서 나온다.

눌림부터 보자. 벨벳 재킷을 차 안에서 오래 앉아 있거나, 가방끈을 어깨에 걸치거나, 옷걸이에 접어 두면 눌린 자리의 파일이 한 방향으로 쓰러지며 그 부분만 색이 진하거나 연하게 떠 보인다. 다림판에 대고 눌러 다리면 이 눌림이 영구히 박히니 절대 금물이다. 대신 스팀다리미를 천에서 30cm 띄워 결에 수증기만 쐬거나, 샤워 후 김 찬 욕실에 30분 걸어 두면 파일이 적당히 적셔져 일어선다. 그다음 부드러운 옷솔로 결 방향을 따라 가볍게 빗어 세우면 대부분 자국이 사라진다. 보관도 접지 말고 두툼한 옷걸이에 걸어 어깨 라인이 눌리지 않게 둔다.

물자국은 더 까다롭다. 비 오는 날 벨벳에 빗방울이 떨어지면 그 자리의 파일이 젖어 뭉치면서 마른 뒤에도 둥근 얼룩이 남는다. 한 방울씩 부분적으로 젖으면 경계가 또렷한 자국이 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이미 젖었다면 그 면 전체를 고르게 살짝 적셔 경계를 흐린 뒤 결 방향으로 빗어 말리는 게 부분 자국보다 낫다. 소나기에 벨벳을 입고 나섰다가 어깨에만 점점이 자국이 박히는 게 전형적인 사고이니, 비 예보가 있는 날은 벨벳을 피하거나 위에 코트를 한 겹 덮는다.

세탁은 면벨벳·합성벨벳이라도 가능하면 드라이클리닝이 안전하고, 집에서 빨아야 한다면 뒤집어서 찬물에 단독·울코스로 약하게 돌린 뒤 탈수는 최소로 한다. 비틀어 짜면 파일이 영구히 꺾이니 짜지 말고 눌러 물기만 뺀다. 실크벨벳 드레스는 가정 세탁을 시도하지 말고 전문 세탁에 맡기는 게 결과적으로 옷값을 아끼는 길이다. 보풀이나 먼지는 점착롤러로 떼지 말고—접착력이 파일을 뽑는다—옷솔로 결 따라 쓸어 낸다.

출처

자주 묻는 질문

벨벳이랑 코듀로이(골덴)는 뭐가 다른가요?

둘 다 표면에 짧은 털(파일)을 세운 직물이지만, 벨벳은 파일이 빈틈없이 균일하게 서서 결 전체가 한 덩어리 광택으로 흐르고, 코듀로이는 그 파일이 세로 골(웨일)로 줄지어 나뉘어 골과 골 사이가 매트하게 패입니다. 벨벳은 드레시·야간, 코듀로이는 캐주얼·복고로 입는 게 갈립니다.

벨벳 옷이 눌려서 자국이 생겼는데 펼 수 있나요?

대부분 펴집니다. 스팀다리미나 욕실 수증기를 30cm 떨어뜨려 결에 쐬어 파일을 적신 뒤, 부드러운 솔로 결 방향으로 가볍게 빗어 세우면 눌린 파일이 일어섭니다. 직접 눌러 다리면 오히려 영구히 평평해지니 다림판에 대고 다리지 않습니다.

벨벳은 어느 계절에 입나요?

두께가 있고 빛을 깊게 머금는 면벨벳·실크벨벳은 늦가을부터 겨울, 특히 연말 파티·하객 시즌이 본 무대입니다. 다만 얇은 스트레치 벨벳 톱이나 벨벳 셔츠는 실내 위주라면 환절기에도 입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