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
알파카 — 캐시미어보다 따뜻한데 털이 덜 빠진다
알파카 — 가볍고 따뜻한 고급 모. 캐시미어보다 보온 강하고 털빠짐 적은 니트·코트 소재
페루 안데스 4,000미터 고원, 밤이면 영하로 떨어지는 곳에서 알파카는 한 가지 능력으로 살아남았다. 속이 빈 섬유 안에 공기를 가둬 체온을 붙드는 것. 이 동물의 털을 그대로 실로 자은 게 알파카 니트다. 그래서 알파카 코트를 처음 입어 본 사람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다. "두께에 비해 어이없이 따뜻하다."
알파카는 라마와 함께 남미 낙타과에 속하는 동물이고, 그 털은 양모와 결이 다른 소재다. 캐시미어가 "솜처럼 폭신한 고급 모"라면 알파카는 "가볍게 매끈하고 끈질기게 따뜻한 고급 모"다. 같은 가격대에서 캐시미어를 살까 알파카를 살까 망설인 적이 있다면, 이 둘이 왜 갈리는지부터 알면 답이 빨리 나온다.
속이 비어서 따뜻하다
알파카 섬유의 가장 큰 특징은 단면이다. 안에 미세한 공기 주머니(메둘라)가 발달해 있어, 같은 무게의 양모보다 보온력이 높다. 공기는 가장 좋은 단열재다. 알파카가 캐시미어와 비교해 "더 따뜻하다"는 평을 듣는 근거가 여기 있다 — 폭신함은 캐시미어가 앞서도, 단위 무게당 잡아 두는 열은 알파카 쪽이 강하다.
이게 실제 착용에서 의미하는 건 분명하다. 한겨울 칼바람을 막으려고 두꺼운 울(양모) 코트를 껴입으면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는데, 알파카 코트는 같은 보온을 더 가벼운 그램수로 낸다. 출퇴근에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릴 때 코트 무게가 곧 피로다. 무게가 줄면 그만큼 하루가 덜 무겁다.
또 하나, 알파카 섬유는 양모와 달리 라놀린(양모 특유의 유지)이 거의 없다. 라놀린은 양모 알레르기의 주범 중 하나라, 양모만 입으면 목이 가렵던 사람도 알파카는 견디는 경우가 있다. 유지가 없으니 냄새 흡착도 적고, 며칠 입어도 양모 니트처럼 퀴퀴해지지 않는다.
캐시미어와 어디서 갈리나
알파카와 캐시미어를 헷갈리는 사람이 많은데, 손으로 만져 보면 성격이 다르다. 캐시미어는 손가락 사이에서 구름처럼 눌리고 부피가 살아난다. 알파카는 더 매끈하고 차분하게 떨어진다. 드레이프가 무겁다는 뜻이다. 같은 라운드넥 니트라도 캐시미어는 몸에 폭 감기고, 알파카는 아래로 길게 흐른다. 롱 카디건이나 코트에서 이 떨어지는 드레이프가 오히려 실루엣을 잡아 준다.
가장 실용적인 차이는 털빠짐과 보풀이다. 캐시미어는 섬유가 가늘고 짧아 마찰에 보풀이 생기기 쉽고, 가방끈이 스치는 어깨와 소맷부리가 먼저 뭉친다. 알파카는 섬유가 더 길고 표면이 매끈해 잘 짠 제품이라면 보풀이 확연히 덜하다. 검은 코트 위에 흰 머플러를 둘렀을 때 옷에 잔털이 묻어나는 그 짜증을, 좋은 알파카는 줄여 준다.
값도 갈린다. 같은 등급·같은 밀도라면 알파카가 캐시미어보다 대체로 저렴하다. 캐시미어 한 마리가 한 해에 내는 쓸 만한 속털이 150200그램인 데 비해, 알파카는 한 번 깎을 때 35킬로그램이 나온다. 생산량 자체가 다르니 원료값이 다르고, 그 차이가 가격표에 그대로 찍힌다. "캐시미어 같은 폭신함은 덜해도 좋으니 가볍고 따뜻하면서 가성비 있는 겨울 니트"를 찾는다면 알파카가 정답에 가깝다.
다만 폭신한 손맛 그 자체가 목적이라면 알파카로 캐시미어를 대신할 수는 없다. 솜사탕 같은 촉감, 맨살에 닿을 때의 그 부드러움은 여전히 캐시미어의 영역이다. 알파카는 그 자리를 노리는 소재가 아니라, 보온·드레이프·내구라는 다른 카드를 쥔 소재다.
등급을 모르면 돈을 잘못 쓴다
"알파카"라는 한 단어 안에 천차만별의 품질이 들어 있다. 핵심은 섬유 굵기다. 어린 개체의 첫 털인 베이비 알파카는 평균 21~23마이크론 안팎으로 가장 가늘고 부드러워, 목에 닿아도 따끔거림이 거의 없다. 더 가는 로열 알파카(19마이크론 이하 수준) 등급도 있다. 반대로 성체의 굵은 털은 30마이크론을 넘어 목에 닿으면 까끌함이 분명히 느껴진다.
여기서 입문자가 가장 자주 하는 실수가 나온다. 라벨에 "100% Alpaca"만 보고 안심하는 것. 등급 표기가 없는 100% 알파카는 굵은 섬유가 섞였을 가능성이 있고, 그게 목을 긁는 터틀넥으로 오면 한 번 입고 옷장행이다. 목에 직접 닿는 아이템일수록 베이비 알파카 이상 등급을 확인한다. 라운드넥이나 코트처럼 안에 셔츠·이너를 받쳐 입어 피부에 직접 안 닿는 아이템이라면 등급을 한 단계 낮춰도 무방하다.
직조 방식으로 갈리는 이름도 알아 두면 좋다. 일반적인 곱슬 털을 우아카야(Huacaya)라 부르고, 누에고치 실처럼 곧고 광택이 흐르는 희귀한 털을 수리(Suri)라 한다. 수리 알파카는 표면에 비단 같은 광택이 돌아 같은 알파카라도 한층 고급스럽게 읽히고 값도 그만큼 뛴다. 매장에서 광택이 유난히 흐르는 알파카를 봤다면 수리일 확률이 높다.
니트로, 코트로, 머플러로
알파카가 가장 빛나는 자리는 니트 스웨터와 울 코트다. 니트에서는 가벼운 보온이, 코트에서는 드레이프가 무기다.
니트라면 떨어지는 드레이프를 살린 롱 카디건이 알파카와 잘 맞는다. 캐시미어 카디건이 몸에 감겨 짧고 단정해 보인다면, 알파카 롱 카디건은 무릎 가까이 길게 흘러 키를 세로로 늘여 준다. 라운드넥이나 터틀넥 니트는 셔츠 위 한 장으로 늦가을부터 한겨울까지 두루 쓴다. 청바지에 차콜 알파카 라운드넥, 그 위에 코트 한 장이면 출근복으로 충분하다.
코트는 알파카가 진가를 보이는 무대다. 가볍고 따뜻한 데다 매끈한 표면이 라인을 깔끔하게 잡아, 같은 무게의 양모 코트보다 실루엣이 산다. 카멜·차콜·오트밀 같은 뉴트럴 컬러가 알파카의 잔잔한 광택을 가장 잘 살린다. 다만 코트는 면적이 넓고 마찰이 잦은 만큼, 형태 유지를 위해 100% 알파카보다 양모를 섞은 혼방을 택하는 쪽이 오래 입기엔 유리하다. 메리노 울·알파카 혼방은 메리노의 탄성과 알파카의 보온을 합쳐, 입었다 벗었다 해도 형태가 덜 처진다.
머플러는 알파카로 입문하기 가장 좋은 아이템이다. 부담 없는 값으로 가벼운 따뜻함을 바로 체감할 수 있고, 목에 두를 때 등급 차이가 즉시 느껴진다. 매장에서 베이비 알파카 머플러를 목에 직접 둘러 까끌함을 확인하고, 검은 옷 위에 비벼 보풀이 묻는지 보면 그 브랜드 알파카의 수준이 한 번에 드러난다.
관리가 까다롭지 않다는 게 강점
알파카는 캐시미어만큼 손이 가지 않는다. 이것 자체가 큰 장점이다. 라놀린이 없어 냄새와 오염이 덜 배므로 매번 빨 필요가 없고, 입은 뒤 통풍 잘 되는 곳에 하루 걸어 두는 에어링만으로 대개 충분하다. 같은 옷을 연일 입기보다 하루씩 쉬게 하면 섬유가 회복할 시간을 번다.
세탁은 25도 이하 찬물에 울·캐시미어 전용 중성 세제로 짧게 끝낸다. 비틀어 짜지 말고 타월로 눌러 물기를 뺀 뒤, 행거에 걸지 말고 평평하게 눕혀 그늘에서 말린다. 알파카는 양모보다 탄성이 약해 젖은 채 걸어 두면 무게에 기장이 늘어난다. 보관은 접어서, 완전히 말린 상태로. 단백질 섬유라 좀벌레의 먹이가 되니 통기되는 면 커버에 넣고 삼나무 블록이나 라벤더 사쉐 같은 방충제를 함께 둔다. 비닐 보관은 습기를 가둬 곰팡이를 부르니 피한다.
초반에 잔털이 좀 날린다면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짧은 섬유가 빠져나오는 정상 과정이라 몇 번 입으면 잦아든다. 단 손으로 뜯지 말고, 보풀이 생기면 전용 디필러로 가볍게 밀어 낸다. 손으로 뜯으면 멀쩡한 섬유까지 끊겨 구멍의 시작이 된다.
알파카는 "가볍게 따뜻하고, 손이 덜 가고, 잘 안 빠지는" 겨울 소재다. 캐시미어의 폭신함을 포기하는 대신 보온과 실용을 얻는 거래 — 그 거래가 합당하게 느껴진다면 알파카는 오래 곁에 둘 소재다.
출처
- The Woolmark Company, Alpaca and other fibres. https://www.woolmark.com
- Tortora, Phyllis G. & Ingrid Johnson. The Fairchild Books Dictionary of Textiles. Bloomsbury, 2013.
- Kadolph, Sara J. Textiles. Prentice Hall, 2010.
- Wikipedia, Alpaca fiber. https://en.wikipedia.org/wiki/Alpaca_fiber
자주 묻는 질문
알파카와 캐시미어는 뭐가 다른가요?
둘 다 가볍고 따뜻한 고급 모지만 성격이 갈립니다. 알파카는 섬유 속이 비어 있어 같은 무게로는 캐시미어보다 보온이 강하고, 라놀린(유지)이 거의 없어 표면이 매끈하고 보풀이 덜 생깁니다. 대신 캐시미어 특유의 솜처럼 폭신한 촉감과 부피감은 캐시미어가 앞섭니다. 가격은 같은 등급이면 알파카가 더 저렴한 편입니다.
알파카 니트는 따끔거리지 않나요?
등급에 따라 다릅니다. 어린 개체의 첫 털인 베이비 알파카(평균 21~23마이크론 안팎)는 거의 따끔거리지 않지만, 굵은 일반 알파카는 목에 닿으면 까끌함이 느껴질 수 있습니다. 라벨에 베이비 알파카·로열 알파카로 등급이 표기됐는지 확인하고, 목에 직접 닿는 터틀넥이라면 더 가는 등급을 고르는 편이 낫습니다.
알파카는 정말 털이 안 빠지나요?
잘 짠 제품은 거의 안 빠집니다. 다만 섬유가 짧은 저가 방적사나 기모를 세게 일으킨 제품은 초반에 잔털이 날립니다. 검은 옷 위에 흰 알파카 머플러를 둘렀을 때 보풀이 묻는지 매장에서 한 번 비벼 보면 바로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