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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

톰보이 — 남자 옷장에서 한 벌을 빌려 오는 일

톰보이 — 여자가 남자 옷장의 무드를 빌려오는 결. 보이프렌드 핏·셔츠·데님·스니커즈의 중성적 편안함

이 스타일과 함께 보는 항목 · 1

오버사이즈 옥스퍼드 셔츠의 첫 단추를 풀고 소매를 두 번 접어 올린다. 안에는 흰 탱크톱, 아래는 밑단을 한 번 접은 헐렁한 데님, 발에는 굽 없는 흰 스니커즈. 거울 앞 그 사람은 분명 여자인데, 옷은 어젯밤 남자친구 옷장에서 꺼내 온 것 같다. 그 어긋남 — 몸은 여성인데 차림은 소년인 — 이 톰보이의 전부다.

여기서 인접 개념과의 선을 먼저 긋는 게 좋겠다. 젠더리스는 옷에서 성별 신호를 빼서 누가 입었는지 모르게 만든다. 톰보이는 정반대다. 입은 사람이 여자라는 사실을 지우지 않는다. 큰 셔츠 속 가는 손목, 데님 위로 드러난 발목, 보이시한 차림에 얹은 붉은 입술 — 이 대비를 일부러 남겨둔다. 톰보이는 성별을 해체하지 않고 빌려 온다. 빌린 옷은 끝내 자기 것이 아니라서, 그 어색한 헐렁함이 오히려 멋이 된다.

자전거 타던 소녀에서 출발한 말

'톰보이(tomboy)'는 16세기 영어에서 처음엔 '거칠고 시끄러운 사내아이'를 뜻했고, 곧 '사내아이처럼 노는 여자아이'로 옮겨갔다. 옷으로 굳어진 건 19세기 말부터다. 코르셋과 긴 치마에 묶여 있던 여성 복식에 균열이 가던 무렵, 자전거가 보급되면서 여성들이 블루머라는 헐렁한 바지를 입기 시작했고, 활동을 위해 셔츠와 바지를 택한 여자들이 '톰보이'라 불렸다.

20세기 들어 옷장이 본격적으로 흔들린다. 1930년대 마를렌 디트리히와 캐서린 헵번이 스크린과 거리에서 남성용 슬랙스와 테일러드 수트를 입었다 — 헵번은 평생 트라우저를 고수해 당대엔 스캔들에 가까웠다. 코코 샤넬은 여성복에 저지·트위드 같은 남성복 소재와 편안한 실루엣을 끌어들였고, 이브 생 로랑은 1966년 '르 스모킹'으로 여성에게 턱시도를 입혔다. 톰보이의 계보는 그러니까 한 세기 넘게 여자들이 남자 옷장의 빗장을 하나씩 열어온 기록이다(복식사·패션사 자료).

이 역사가 코디에 주는 단서는 분명하다. 톰보이의 핵심 아이템은 거의 다 원래 남성복이었던 것이라는 점. 셔츠, 데님, 테일러드 재킷, 운동화 — 빌려 오는 출처를 알면 무엇을 어떻게 입을지가 보인다.

빌려 올 네 벌

가장 먼저 손이 가는 건 셔츠다. 몸에 붙는 블라우스가 아니라 어깨선이 떨어지는 옥스포드 셔츠의 OCBD다. 폭신한 옥스퍼드 직조의 빳빳함이 헐렁한 핏을 받쳐주기 때문에, 폴리 혼방의 광택 도는 셔츠보다 100% 면 옥스퍼드가 훨씬 톰보이답다 — 후자는 몇 번 빨면 광택이 떠서 '빌려 온 옷'이 아니라 '회사 유니폼'으로 읽힌다. 첫 단추 두 개를 풀고 소매를 걷는 순간 셔츠는 소년의 것이 된다.

하의는 스트레이트 데님가 중심축이다. 스키니가 아니라 다리 라인을 따라가지 않는 직선형 또는 와이드 데님. 진한 인디고 로데님은 단정한 쪽, 워싱이 들어가 무릎이 살짝 닳은 데님은 거친 쪽으로 기운다. 밑단을 한 번 접어 발목을 보이게 하면 헐렁한 위쪽과 균형이 잡힌다. 데님이 톰보이의 척추라면, 카키 치노나 카무플라주 카고는 그 변주다.

발은 굽을 버리는 자리다. 흰 캔버스 스니커즈·운동화 — 컨버스 척테일러나 반스 올드스쿨 같은 납작한 로우탑이 정석이다. 굽이 1cm라도 올라가면 톰보이는 흔들린다. 워커 부츠나 첼시 부츠로 무게를 줄 수도 있지만, 입문이라면 흰 스니커즈 하나로 충분하다. 마지막 한 벌은 어깨에 걸치는 것들이다 — 오버사이즈 데님 재킷, 코치 재킷, 큰 후디, 혹은 의외로 잘 듣는 테일러드 블레이저. 재킷의 어깨가 내 어깨보다 살짝 큰 그 한 치수가 '빌려 온 느낌'을 만든다.

헐렁함을 망치는 한 가지

톰보이가 가장 자주 무너지는 지점은 상하 모두 헐렁하게 입는 것이다. 큰 셔츠에 와이드 데님에 박시한 재킷까지 겹치면, 보이시한 게 아니라 옷에 잡아먹힌 사람이 된다. 규칙은 젠더리스와 같다 — 한쪽만 볼륨. 셔츠가 크면 데님은 깔끔한 직선으로, 데님이 넓으면 상의를 몸에 가깝게.

두 번째 함정은 발목·손목·목을 전부 덮어버리는 것이다. 몸의 가는 부분이 하나도 안 보이면 헐렁함이 그냥 큰 옷이 된다. 데님 밑단을 접어 발목을 내거나, 소매를 걷어 손목을 보이거나, 셔츠 첫 단추를 풀어 쇄골을 비우거나 — 세 군데 중 적어도 한 군데는 열어둔다. 큰 옷과 드러난 가는 선의 대비, 그게 톰보이의 비례 공식이다.

세 번째는 빌려 온 티가 안 나는 경우다. 처음부터 여성용으로 곱게 재단된 '톰보이풍' 셔츠는 핏이 너무 정확해서 빌려 온 어색함이 없다. 차라리 한 치수 크게 사서 어깨를 떨어뜨리는 편이 결을 산다.

같은 셔츠, 다른 계절

같은 옥스퍼드 셔츠 한 장이 계절을 따라 다르게 움직인다. 봄가을엔 셔츠 그 자체가 주인공이다 — 흰 셔츠, 접은 데님, 흰 스니커즈. 더 들어갈 게 없는 톰보이의 기본형이고, 여기서 모든 변주가 갈라진다.

여름엔 셔츠를 활용한다. 안에 흰 탱크톱이나 리브 슬리브리스를 입고 셔츠를 아우터처럼 열어 걸치거나, 아예 무지 박시 티셔츠에 데님 버뮤다 쇼츠와 스니커즈로 간다. 8월 한낮의 톰보이는 거의 소년의 여름 차림 그대로다.

겨울엔 레이어링이 무게를 더한다. 셔츠 위에 크루넥 니트나 케이블 스웨터를 겹치고 그 위로 오버사이즈 코트나 무톤. 발은 첼시 부츠나 워커로 바꿔 무게중심을 내린다. 이 레이어링 감각과 무채색 운용은 미니멀·시티보이와 옷장을 공유한다 — 다만 시티보이가 셋업에 스니커즈를 신어 격식을 반 칸 푸는 남성 무드라면, 톰보이는 여성이 그 셔츠와 데님을 빌려 입는 반대편 입구다.

세 장면

지하철 환승 통로. 누군가 흰 옥스퍼드에 워싱 와이드 데님, 캔버스 스니커즈로 빠르게 걷는다. 화장기는 거의 없는데 입술만 선명한 코럴. 옷은 무심한데 얼굴 한 점이 또렷해서, 보이시함과 여성성이 한 사람 안에서 팽팽하다. 이게 잘 입은 톰보이다.

하객석 둘째 줄. 드레스 코드가 부담스러운 자리에서 누군가 네이비 테일러드 블레이저에 흰 셔츠, 진한 인디고 데님과 로퍼로 왔다. 치마도 힐도 없지만 블레이저의 정돈된 어깨가 격식을 지킨다. 톰보이가 포멀의 문턱까지 갈 수 있다는 증거다.

캠퍼스 잔디밭. 큰 후디에 카고 데님, 캔버스화 차림으로 가방을 어깨에 메고 앉아 있다. 가장 편하고 가장 일상적인 톰보이 — 꾸민 흔적은 없는데 단정하다. 이 무심한 단정함이 톰보이가 한국에서 '꾸안꾸 보이시'라 불리며 오래 사랑받는 이유다(무신사 매거진).

옷에서 뺀 여성성을 어디로 돌릴까

톰보이의 응용은 결국 긴장을 어떻게 거느냐의 문제다. 옷이 중성적일수록, 붉은 립이나 골드 후프 귀걸이 하나, 혹은 새빨갛게 칠한 손톱이 훨씬 강하게 읽힌다. 옷에서 덜어낸 여성성을 디테일 한 점으로 되돌려, 보이시한 차림과 또렷한 여성 신호 사이의 거리를 만드는 것 — 그 거리가 멋의 진폭이다.

향수와 헤어도 같은 원리로 쓴다. 짧게 친 단발이나 질끈 묶은 머리는 톰보이를 더 밀어붙이고, 길고 풀어헤친 머리는 옷의 보이시함과 대비를 만든다. 어느 쪽이든 정답은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톰보이는 여성성을 버리는 스타일이 아니라 그것을 어디에 둘지 다시 정하는 스타일이라는 것. 빌려 온 셔츠 한 장과 내 손목의 가는 선, 그 둘이 한 화면에 있을 때 톰보이는 완성된다.

출처

자주 묻는 질문

톰보이룩과 젠더리스는 같은 건가요?

방향이 반대입니다. 젠더리스는 성별 신호 자체를 지워 어느 쪽으로도 안 기울게 하는 일이고, 톰보이는 여자가 자기 정체성을 유지한 채 남성복의 무드만 빌려오는 일입니다. 톰보이 룩에는 여전히 "여자가 큰 셔츠를 입었다"는 대비가 살아 있고, 그 대비가 매력의 핵심입니다.

키가 작거나 마른 편인데 보이프렌드 핏 입어도 되나요?

됩니다. 다만 상하 모두 헐렁하면 옷에 파묻힙니다. 한쪽만 풀어주세요. 큰 셔츠를 입으면 데님은 발목이 보이는 길이로 잘라 시선이 끊기게 하고, 와이드 데님을 입으면 상의는 어깨선이 떨어지는 정도까지만. 발목·손목·목 중 한 군데를 비워 몸의 가는 부분을 보이는 것이 비례를 살립니다.

톰보이는 화장이나 액세서리를 안 하는 건가요?

오히려 반대로 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옷이 중성적일수록 붉은 입술이나 골드 후프 귀걸이 하나가 더 또렷하게 읽힙니다. 옷에서 뺀 여성성을 디테일 한 점으로 되돌려 긴장을 만드는 것이 응용 단계의 톰보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