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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원

샌들 역사 — 발가락을 드러낸 채 5,000년을 걸어온 신발

샌들 역사 — 기원전 이집트부터 현대 컴포트 샌들까지, 발가락을 드러낸 가장 오래된 신발의 계보

기원전 3,000년경 이집트의 어느 무덤 벽화에는 파피루스와 야자 잎으로 엮은 밑창에 가죽 끈을 단 신발이 그려져 있다. 뜨거운 모래 위를 걷기 위해 발바닥만 보호하고 나머지는 공기 중에 풀어둔 이 단순한 구조물이 오늘날 우리가 아는 모든 샌들의 시작이다. 같은 시기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양털 펠트로 만든 샌들이, 기원전 1,500년경 그리스 크레타 섬에서는 발가락 사이로 끈이 지나가는 조리형 샌들이 나왔다. 인류가 신발을 만드는 기술의 첫 페이지는 발을 완전히 가두지 않는 데서 열렸다.

이 단순한 신발은 곧 신분 표시 도구로 진화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끈을 종아리까지 감아 올리는 크레피데스(crepides)가 자유 시민의 복장이었고, 로마에서는 검투사에게 칼리가(caligae)라는 징 박힌 군용 샌들을 신겼다. 같은 열린 신발이라도 끈을 어떻게 묶고 어디까지 올리느냐로 노예와 시민, 병사와 장군이 갈렸다. 르네상스 이후 유럽에서 닫힌 구두가 주류가 되자 샌들은 한동안 비공식적인 신발, 가난한 자의 풋웨어로 밀려나는 굴곡을 겪는다.

발 건강 운동이 패션을 바꾸다

20세기 초 독일에서 샌들이 다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경로는 흥미롭다. 패션계가 아니라 의학계에서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발을 옥죄는 구두가 변형과 질환을 유발한다는 문제의식 아래, 발가락이 자유롭게 움직이고 아치를 받쳐주는 개방형 신발을 장려하는 발 건강 운동이 일어났다. 이 흐름에서 1963년 버켄스탁이 코르크와 라텍스로 성형한 풋베드를 장착한 샌들을 내놓으면서 '편한 샌들'이라는 새 범주가 생겼다. 1970~80년대 히피 문화와 아웃도어 붐이 이 위에 얹히며 샌들은 다시 일상 신발의 자리를 되찾았다.

지금 우리가 신는 샌들는 이 고대 유산과 현대 컴포트 공학이 만난 지점에 서 있다. 발바닥을 받치는 밑창과 발을 고정하는 스트랩, 이 두 요소만으로 이루어진 구조는 5,000년 전과 본질적으로 같다. 달라진 것은 소재와 용도의 분화다. 해변용 고무 쪼리에서 파티용 메탈릭 힐까지, 같은 '오픈형 신발'이라는 단어 안에 들어가는 디자인 폭은 어떤 신발 카테고리보다 넓다. 그래서 샌들을 한 켤레로 모든 상황을 해결하려는 시도는 거의 항상 실패한다 — 용도가 갈리는 신발이기 때문이다.

스트랩 하나가 만든 계급과 유형

샌들의 역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단순한 끈이 어떻게 신분과 스타일을 동시에 구축했는가다. 고대 로마에서 칼리가는 군단병에게만 허용된 군용 샌들이었고, 황제와 원로원 의원은 보라색 끈이 달린 별도의 샌들을 신었다. 같은 밑창이라도 끈의 색과 매듭 방식이 신분증이었던 셈이다. 이 '스트랩의 정치학'은 현대까지 내려와 실루엣의 문제로 변주된다.

발등에 가느다란 끈 한두 개만 얹은 미니멀 스트랩은 다리가 끊김 없이 이어져 보이는 착시를 만든다. 반대로 발등과 발목을 여러 줄로 감싸는 글래디에이터 샌들은 발목에서 시선을 가둬 다리를 토막 낸다 — 키가 작은 편이라면 발목을 가로지르는 스트랩이 적을수록 유리하다. 발가락 사이로 끈이 들어오는 T자형은 해변·풀사이드에 가깝고, 발등만 덮는 슬라이드는 착탈이 가장 빠르다. 굽 없는 플랫이 가장 범용이고, 웨지솔은 안정적인 키 업이 필요한 리조트·데이트로, 플랫폼은 Y2K·스트리트 무드로, 스포츠 샌들은 아웃도어·고프코어로 간다. 하나의 유형이 하나의 상황을 책임지는 구조다.

소재가 계절과 무드를 가른다

고대 이집트인이 파피루스로 샌들을 엮었다면, 현대인은 소재 선택 자체가 착용 장면을 결정한다. 가죽은 신을수록 스트랩이 발 형태에 맞게 늘어나 길들여지는 장점이 있지만, 방수 처리가 안 돼 비에 젖으면 변형되고 바닷물 소금기에 닿으면 갈라진다. 천연 가죽 샌들은 데일리용으로 값을 하지만, 해변에 끌고 가면 한 시즌 만에 수명을 다할 수 있다는 뜻이다. 스웨이드는 촉감이 부드럽고 매트한 인상을 주는 반면 물과 땀에 약하니 방수 스프레이를 미리 입히고 직사광선 장시간 노출을 피해야 한다.

합성섬유 스트랩은 가볍고 젖어도 빨리 마르며 색상 선택 폭이 넓다. 고무나 EVA 소재의 슬라이드는 물에 강해 해변·수영장·실내 홈웨어까지 커버한다. 같은 샌들이라도 가죽은 도시의 카페에, 합성섬유는 바닷가에, 스웨이드는 저녁 약속에 어울리는 식으로 소재가 착용 장소를 미리 정해준다. 이 소재별 성격을 무시하고 한 켤레로 모든 곳을 돌면 샌들이 먼저 망가지거나 자리가 어색해지는 실수가 나온다.

고대 유물이 컴포트 아이콘이 되기까지

샌들의 현대적 부활을 이해하려면 1960~70년대 독일로 가야 한다. 버켄스탁이 코르크 풋베드를 대량생산하기 전까지, 샌들은 '편한 신발'이라는 개념과 연결되지 않았다. 오히려 밑창이 얇고 보호 기능이 떨어지는 불완전한 신발로 여겨졌다. 풋베드 기술이 이 인식을 뒤집으며 샌들은 정형외과적 도구에서 라이프스타일 아이콘으로 전환된다. 1990년대 그런지 무브먼트에서 커트 코베인이 신은 낡은 버켄스탁은 이 전환의 상징적 장면이었다.

오늘날 샌들은 5,000년 전 이집트 모래밭에서 출발해 독일의 발 건강 운동과 미국의 반문화를 거쳐, 다시 런웨이와 스트리트를 오가는 아이템이 됐다. 밑창 하나와 끈 몇 개로 이루어진 이 단순한 구조물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는 결국 '발을 가두지 않는 자유'라는 본질이 어떤 시대에도 유효했기 때문일 것이다.

출처

자주 묻는 질문

샌들은 언제부터 신기 시작했나요?

기원전 수천 년 전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유적에서 이미 밑창에 끈을 단 형태가 발견됩니다. 인류가 만든 가장 오래된 신발 유형 중 하나로, 고대 그리스·로마에서는 끈을 어떻게 묶느냐로 신분까지 표시했습니다.

샌들이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왔나요?

영어 '샌들(sandal)'은 라틴어 '산달리움(sandalium)'에서 왔고, 그 뿌리는 고대 그리스어 '산달리온(sandalion)'입니다. 원래는 특정 스타일의 여성용 샌들을 가리키는 말이었고, 모래(sand)와는 어원적으로 무관합니다.

현대 패션에서 샌들은 언제 다시 주목받았나요?

20세기 독일의 발 건강 운동과 아웃도어 문화를 타고 돌아왔습니다. 특히 1970~80년대 버켄스탁이 코르크 풋베드로 컴포트 샌들 시장을 열면서 패션의 영역으로 재진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