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
스칸디 스타일 (Scandinavian) — 회색 위에 컬러 한 점
스칸디 스타일 — 기능적 미니멀에 컬러 한 점. 코펜하겐 패션위크의 따뜻한 실용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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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펜하겐 패션위크 첫날, 스트룀에 거리. 카메라가 잡는 건 런웨이가 아니라 쇼장 밖 보도다. 회색 멜란지 코트에 자전거 헬멧을 든 여자가 코발트블루 발레플랫을 신고 지나간다. 발끝의 그 파랑 한 점 말고는 전부 무채색이다. 이 사진 한 장이 지난 10년간 '스칸디 스타일'이라는 말이 가리켜 온 거의 전부다 — 차가운 회색 바탕에 채도 높은 색을 딱 한 군데만.
여기서 흔한 오해를 먼저 박는다. 스칸디 스타일은 미니멀의 북유럽 사투리가 아니다. 둘은 색을 다루는 방향이 정반대다. 미니멀은 색을 지워서 핏과 소재만 남기는 쪽으로 간다. 스칸디는 회색·아이보리를 깔아 놓고 그 위에 버터옐로나 토마토레드를 일부러 한 점 떨어뜨린다. 비우는 미학이 아니라 한 점만 허락하는 규칙이다. 그래서 코펜하겐 거리는 미니멀보다 따뜻하고, 동시에 미니멀보다 명료하다.
디자인이 아니라 위도에서 온 스타일
스칸디 룩의 절반은 위도 55~60도가 만들었다. 코펜하겐의 12월은 오후 3시 반이면 해가 진다. 1년의 절반이 흐리고 짧은 빛 속에서 사람들은 실내를 따뜻하게 데우는 '휘게(hygge)'라는 단어를 만들었고, 그 정서가 옷장으로 그대로 들어왔다. 채도 높은 한 점은 멋이기 전에 회색 하늘에 대한 생존 반응이다. 잿빛 도시에서 코발트 가방 하나가 사람을 살린다.
기능도 같은 출처다. 코펜하겐은 시민의 절반 가까이가 자전거로 출근하는 도시다. 페달을 밟아도 들리지 않는 폭, 안장에 앉아도 끼지 않는 신축, 비 와도 무너지지 않는 핏 — 이 세 조건이 스칸디 실루엣을 결정했다. 펜슬스커트가 코펜하겐 거리에서 드문 이유, 통 넓은 울 코트와 납작한 발레플랫이 압도적인 이유가 여기 있다. 미니멀이 미학적 절제라면 스칸디의 절제는 자전거 핸들과 빗방울에서 나온 실용이다.
소재 선택도 빛과 추위가 받아쓴다. 두툼한 멜란지 울, 보풀이 살아 있는 모헤어, 살짝 뻣뻣한 보일드 울. 손으로 만지면 푸석하게 따뜻한 질감들이다. 한국 미니멀이 매끈한 메리노와 캐시미어로 가는 곳에서, 스칸디는 일부러 거친 표면의 울을 택해 흐린 빛 아래서도 옷에 부피감이 살게 한다.
회색 위의 그 한 점, 어떻게 고르나
스칸디의 색 운용은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 베이스 90퍼센트가 무채색이면, 나머지 10퍼센트에 채도를 몰아준다. 베이스는 콘크리트그레이, 오트밀, 아이보리, 차콜. 포인트는 코발트블루, 버터옐로, 토마토레드, 켈리그린, 후크시아 중 하나. 둘 셋을 동시에 쓰면 그건 스칸디가 아니라 그냥 컬러풀한 옷이다. 한 점의 규율을 어기는 순간 무드가 깨진다(포인트 컬러).
그 한 점을 어디에 놓느냐가 응용자와 입문자를 가른다. 입문자는 상의에 큰 면적으로 색을 쓴다 — 코발트 니트 한 장에 회색 슬랙스. 틀리진 않았지만 무겁다. 코펜하겐 사람들은 색을 발끝과 손끝으로 민다. 회색 코트에 토마토레드 발레플랫, 차콜 셋업에 버터옐로 가방, 오트밀 니트 위에 후크시아 비니. 면적이 작을수록 색은 더 살고, 옷 전체는 더 가벼워진다. 색을 키우지 말고 색을 밀어내는 게 핵심이다.
검증 가능한 의견 하나. 코발트 한 점은 거의 실패하지 않지만 버터옐로는 피부 톤을 심하게 탄다. 옐로는 노란기 도는 피부에 얹으면 둘 다 누레져 얼굴이 칙칙해지므로, 옐로 포인트는 얼굴에서 먼 신발이나 가방으로 내리는 편이 안전하다. 코펜하겐 인플루언서들이 옐로를 거의 발끝에서만 쓰는 게 우연이 아니다.
미니멀 스칸디와 맥시멀 스칸디
2015년을 기점으로 코펜하겐은 두 갈래로 갈라졌다. 한쪽은 위에서 말한 회색-한점의 미니멀 스칸디. 다른 한쪽은 디자이너 디타 라이파흐가 이끈 Ganni가 연 맥시멀 스칸디다. Ganni는 잔꽃무늬, 레오파드, 퍼프소매를 들고 나와 '북유럽=무채색'이라는 공식을 코펜하겐 안에서 직접 깼다. 같은 패션위크 보도에 회색 코트의 여자와 꽃무늬 원피스에 카우보이부츠를 신은 여자가 나란히 찍힌다. 둘 다 스칸디다.
이 분기가 놈코어와의 차이도 선명하게 만든다. 놈코어는 익명성이 목적이라 색도 핏도 일부러 평범한 자리에 머문다. 스칸디는 정반대로 '한 점'에서 개성을 선언한다. 놈코어 옷장에서 코발트 발레플랫을 빼면 여전히 놈코어지만, 스칸디 옷장에서 빼면 그냥 칙칙한 회색 한 벌이 된다. 그 한 점이 있고 없고가 두 스타일을 가르는 분수령이다.
브랜드로 보면 미니멀 축에는 덴마크의 Arket과 스웨덴 H&M 그룹의 COS, 핀란드 마리메꼬, 노르웨이 노스프로젝트가 있다. COS는 회색-한점 문법을 거의 교과서처럼 매장에 진열한다. 맥시멀 축에는 Ganni, Stine Goya, Baum und Pferdgarten이 색과 프린트를 끌고 간다. 한국 쇼핑객이 헷갈리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 COS를 사면서 스칸디를 기대했다가 정작 그 화려한 코펜하겐 거리 사진과 안 맞는다고 느끼는 건, 두 스칸디를 하나로 봤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입을 때 무너지는 지점들
가장 흔한 실패는 계절을 무시한 복제다. 코펜하겐의 룩은 9월부터 5월까지 8개월의 추위가 전제다. 두꺼운 멜란지 코트와 보일드 울 니트를 7월 한국에서 그대로 입으면 무드가 아니라 더위만 남는다. 여름 스칸디는 옷이 아니라 색에서 가져와야 한다. 리넨 셔츠 한 장에 코발트 린넨 토트, 아이보리 원피스에 토마토레드 샌들. 소재는 여름으로 바꾸고 한 점 규칙만 지키면 무드는 살아 있다.
두 번째 실패는 핏을 슬림하게 잡는 것이다. 스칸디 실루엣은 자전거 위에서 완성됐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넉넉하다. 어깨가 살짝 떨어지는 오버사이즈 코트, 발목에서 끊기는 통 넓은 슬랙스, 발등을 덮지 않는 납작한 신발. 여기에 한국에서 익숙한 '핏 잡힌 정장 라인'을 끼우면 상체는 스칸디인데 하체는 클래식이 되어 둘 다 어색해진다. 위아래 모두 1~2치수 여유를 둔다는 한 가지 원칙만 지켜도 실루엣은 자동으로 코펜하겐 쪽으로 기운다.
마지막으로, 색을 두 점 이상 쓰고 싶은 유혹. 회색 코트에 코발트 가방까지 만족스러우면 거기에 버터옐로 비니를 더 얹고 싶어진다. 그 순간 멈춰라. 스칸디는 색을 더해서가 아니라 참아서 완성된다. 흐린 회색 위에 떠 있는 단 하나의 채도 — 그게 전부다. 한 점.
출처
- Vogue Scandinavia, "What Defines Scandinavian Style" — https://www.voguescandinavia.com/
- Business of Fashion, "Inside Copenhagen Fashion Week's Rise" — https://www.businessoffashion.com/
- Copenhagen Fashion Week 공식 사이트 — https://copenhagenfashionweek.com/
- Wikipedia, "Hygge" — https://en.wikipedia.org/wiki/Hygge
- 내부 참고: 보그·GQ 매거진 · BoF · 위키피디아 패션 항목 · 한국섬유산업연합회
자주 묻는 질문
스칸디 스타일은 결국 무채색 미니멀 아닌가요?
핵심 차이가 거기 있습니다. 미니멀이 색을 빼서 비우는 쪽이라면, 스칸디는 회색 베이스에 코발트나 버터옐로 한 점을 일부러 얹습니다. 색을 절제하는 게 아니라 한 점만 허락하는 규칙이라고 보면 됩니다.
키가 작거나 추운 나라가 아닌데도 스칸디 룩이 되나요?
됩니다. 다만 한국 여름엔 두꺼운 울 레이어가 어울리지 않으니, 코발트 발레플랫 한 켤레나 버터옐로 카디건처럼 컬러 포인트만 가져오세요. 무드는 아이템이 아니라 색 운용에서 옵니다.
Ganni 같은 프린트 옷이 진짜 스칸디인가요?
Ganni의 꽃무늬·레오파드는 2015년 이후 코펜하겐이 미니멀에서 갈라져 나온 분기입니다. 미니멀 스칸디와 맥시멀 스칸디가 같은 도시에서 공존하는 셈이라, 둘 다 스칸디가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