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
새틴 — 실이 길게 떠서 만든 광택
새틴 — 주자직으로 짠 광택 면. 흐르는 드레이프와 슬립드레스
새틴은 천의 이름이 아니다. 짜는 방식의 이름이다. 이걸 모르면 "새틴 드레스를 샀는데 왜 어떤 건 물처럼 흐르고 어떤 건 비닐처럼 뻣뻣하지" 하는 의문이 평생 풀리지 않는다. 새틴은 평직(면 셔츠)·능직(데님)과 함께 직물의 3대 기본 조직 중 하나인 **주자직(satin weave)**을 가리킨다. 무엇으로 짰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짰느냐의 문제다. 그래서 실크 새틴, 폴리 새틴, 코튼 새틴(사틴)이 전부 따로 존재한다.
광택이 나는 원리는 단순하고 물리적이다. 평직은 날실과 씨실이 한 올씩 규칙적으로 교차해 표면이 자잘하게 우툴두툴하다. 새틴은 다르다. 한 가닥의 실을 네 올, 다섯 올, 길게는 일곱 올을 건너뛰어 표면에 길게 띄운 뒤 한 번만 아래로 엮는다. 이렇게 표면에 떠 있는 긴 실가닥(부유사, float)이 빛을 끊김 없이 한 면으로 반사한다. 교차점이 적어 표면이 거울처럼 매끈해지고, 그래서 광택이 몰린다. 같은 흰 실크라도 평직인 하부타이는 은은하게 보송하고, 주자직인 새틴은 번쩍인다 — 실은 똑같고 짜임만 바꿨을 뿐이다.
같은 광택, 전혀 다른 천
여기서 가장 큰 오해가 생긴다. 새틴이라는 단어 하나에 5만 원짜리 졸업파티 드레스와 200만 원짜리 이브닝 가운이 같이 묶인다. 둘 다 새틴이지만 소재가 다르다.
실크 새틴은 주자직을 실크로 짠 것이다. 실크 필라멘트의 단면이 살짝 납작한 삼각형이라 들어온 빛을 여러 각도로 굴절시켜, 보는 각도에 따라 깊이가 달라지는 진주빛 광택이 돈다. 무게가 가볍고 무게 중심이 균일해 몸을 따라 물처럼 흘러내린다 — 천연섬유 중 이만한 유동성을 내는 천은 없다. 단점은 정직하다. 한 번 구겨지면 자국이 오래 가고, 물에 닿으면 얼룩이 지며, 가격이 미터당 몇만 원에서 수십만 원을 오간다. 실크(견) 자체의 예민함을 새틴이 광택으로 증폭시킨 형태다.
폴리 새틴은 같은 주자직을 폴리에스터로 짠다. 폴리 필라멘트는 단면이 거의 완벽한 원형이라 빛을 한 방향으로 평면적으로 튕긴다. 그래서 광택이 균일하게 번들거리고, 결이 없다. 빛 아래서 천을 천천히 돌려 보면 둘은 육안으로 갈린다. 실크 새틴의 광택에는 결이 있고, 폴리 새틴은 어느 각도에서나 똑같이 빛난다. 대신 폴리 새틴은 구김이 거의 안 잡히고, 물세탁이 되고, 가격이 1/10이다. 폴리에스터의 형태 복원력이 여기서 장점으로 작동한다.
어느 쪽이 낫다고 단정할 일이 아니다. 다만 한 가지는 박아 두겠다 — 하객석 둘째 줄에 앉아 두 시간을 버텨야 한다면 폴리 새틴이 현실적이다. 실크 새틴 드레스는 의자에 닿는 엉덩이와 무릎 뒤에 접힘 자국이 그대로 남아, 일어서는 순간 사진에 다 찍힌다. 반대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자리에서 깊은 광택을 원한다면 실크가 답이다. 조명을 받았을 때 폴리는 한 줄로 하얗게 죽고, 실크는 명암이 살아난다.
흐름과 구김, 두 얼굴
새틴을 고를 때 사람들이 광택만 보고 놓치는 게 드레이프다. 표면에 실이 길게 떠 있는 주자직은 조직 자체가 무르고 유연하다. 교차점이 적으니 천이 자기 형태를 버티지 않고 무너지듯 떨어진다. 슬립 드레스(슬립 드레스)나 바이어스컷 스커트가 새틴으로 만들어지는 이유가 이 흘러내림이다. 몸의 곡선을 따라 천이 흐르면서 골반과 허벅지 라인을 부드럽게 감싼다.
이 드레이프는 바이어스컷(45도 사선 재단)과 만나면 극대화된다. 1930년대 디자이너 마들렌 비오네가 천을 사선으로 재단하면 신축성 없는 직물도 신체를 따라 늘어난다는 걸 발견했고, 헐리우드 황금기의 새틴 가운이 전부 이 기법으로 만들어졌다. 1990년대 존 갈리아노와 칼 라거펠트가 이 바이어스 새틴 슬립을 런웨이로 끌어올렸고, 케이트 모스가 무대 밖에서 그걸 캐주얼하게 입으며 슬립 드레스가 일상복이 됐다.
문제는 같은 무름이 구김을 부른다는 것이다. 실크 새틴은 한 번 접히면 그 선이 다림질 전까지 안 풀린다. 지하철 환승 계단을 오르내리며 가방끈이 누른 자리, 안전벨트가 가로지른 자리가 전부 자국으로 남는다. 그래서 실크 새틴 옷은 입기 직전에 다리거나 스티머로 펴서 입고, 옷장에 걸 때도 접지 않고 넓은 옷걸이에 건다. 다림질은 반드시 저온에서 천을 뒤집어 무광 이면을 위로 두고, 면 천을 덧대 직접 열이 광택면에 닿지 않게 한다 — 광택면에 다리미가 직접 닿으면 그 자리만 번들거리는 자국(글레이즈)이 남는다.
새틴의 무광 이면과 사촌들
주자직은 정의상 양면이 다르다. 앞면은 실이 떠서 광택, 뒷면은 무광에 살짝 거칠다. 이 이면을 일부러 겉으로 쓰는 천이 새틴백 크레이프다. 한쪽은 매끈한 새틴, 뒤집으면 오돌토돌한 크레이프 — 한 장으로 광택과 매트를 다 쓸 수 있어 재킷 안감과 겉감을 한 천으로 처리하는 테일러링에 쓰인다.
이름이 비슷해 헷갈리는 천들도 정리해 두자. **사틴(sateen)**은 면이나 레이온을 주자직으로 짠 것이다. 침구의 '코튼 새틴'이 바로 사틴인데, 실크 새틴보다 광택이 낮고 묵직하며 세탁 내구성이 좋다. **샤무즈(charmeuse)**는 실크 새틴 중에서도 특히 가볍고 얇아 드레이프가 극단적인 종류로, 슬립 드레스와 란제리에 쓰인다. **두셰스 새틴(duchesse satin)**은 반대다. 빳빳하고 두툼해 형태를 버티는 새틴으로, 웨딩드레스와 볼 가운처럼 실루엣이 부풀어야 하는 옷에 쓴다. 같은 주자직이어도 두께와 소재에 따라 흐르는 천과 서는 천으로 갈린다.
여기서 입문자가 자주 하는 실수가 하나 있다. 광택만 보고 무조건 흐를 거라 기대하는 것이다. 두셰스 새틴으로 만든 슬립 드레스를 사면 천이 몸을 따르지 않고 종처럼 벌어진다. 반대로 샤무즈로 구조적인 재킷을 지으려 하면 천이 형태를 못 잡고 주저앉는다. 새틴은 광택의 종류가 아니라 무게의 종류로 골라야 한다.
입는 자리, 입는 법
새틴은 빛을 모으는 천이라 광량이 천의 인상을 좌우한다. 한낮 사무실 형광등 아래에서 실크 새틴 블라우스는 자칫 잠옷처럼 보일 수 있다. 같은 블라우스가 저녁 레스토랑의 따뜻한 텅스텐 조명 아래로 가면 광택에 깊이가 생긴다. 그래서 새틴은 낮보다 밤, 자연광보다 인공광에서 제값을 한다. 파티(파티·연말 모임)나 저녁 자리가 새틴의 무대인 건 격식 때문만이 아니라 조명 때문이다.
페미닌한 차림(페미닌)에서 새틴을 한 점만 쓰는 게 요령이다. 새틴 스커트에 매트한 니트, 또는 새틴 슬립에 거친 데님 재킷. 광택 면적이 절반을 넘으면 천이 옷을 잡아먹어 입은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광택과 무광의 면적비가 대략 3 대 7쯤일 때 새틴이 액세서리처럼 작동한다. 새틴 슬립 드레스 위에 두툼한 케이블 니트를 걸치면, 흘러내리는 광택 밑단만 남아 한겨울에도 입을 수 있는 한 벌이 된다.
마지막으로 색. 새틴은 광택 때문에 같은 염료라도 채도가 한 단계 올라가 보인다. 매트한 천에서 점잖던 와인색이 새틴에서는 선명한 버건디로 튄다. 그래서 새틴 옷을 살 때는 모니터나 매장 조명에서 본 색보다 한 톤 차분한 색을 고르는 편이 실패가 적다. 검정·짙은 네이비·딥그린처럼 어두운 색이 새틴에서 가장 비싸 보이는 건, 어두운 바탕 위로 광택의 하이라이트가 또렷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출처
- Wikipedia, "Satin" — 주자직 구조·부유사·사틴/샤무즈/두셰스 분류. https://en.wikipedia.org/wiki/Satin
- Encyclopædia Britannica, "Satin (fabric weave)" — 3대 기본 직조(평직·능직·주자직) 중 주자직 정의. https://www.britannica.com/topic/satin
- Victoria and Albert Museum, "Madeleine Vionnet and the bias cut" — 바이어스 재단과 새틴 드레이프의 역사. https://www.vam.ac.uk/articles/madeleine-vionnet
- The Costume Institute / The Met, "Bias cut and 1930s eveningwear" — 헐리우드 황금기 새틴 가운. https://www.metmuseum.org/art/collection
- Textile School, "Satin weave and sateen difference" — 실크 새틴 vs 코튼 사틴 물성 비교. https://www.textileschool.com/229/satin-weave/
자주 묻는 질문
새틴은 어떤 천인가요, 실크와 같은 건가요?
새틴은 소재 이름이 아니라 짜는 방식, 곧 주자직(satin weave)의 이름입니다. 실크로 짜면 실크 새틴, 폴리에스터로 짜면 폴리 새틴이 됩니다. 같은 광택이라도 빛 아래서 천을 돌려 보면 실크 새틴은 결이 살아 있고 폴리 새틴은 균일하게 번들거려 육안으로 갈립니다.
새틴 원피스는 왜 구김이 잘 안 보이나요?
폴리 새틴은 합성섬유의 형태 복원력 때문에 구김이 잘 안 잡힙니다. 반대로 실크 새틴은 한 번 접히면 자국이 오래 남아 의자에 오래 앉는 자리에는 폴리 쪽이 현실적입니다.
새틴은 광택면이 어느 쪽인가요?
주자직은 앞면에 씨실 또는 날실이 길게 떠 광택이 몰리고, 뒷면은 무광으로 거칠게 남습니다. 같은 천을 뒤집으면 새틴의 무광 이면이 나오는데, 이 양면성을 살려 한쪽은 광택, 한쪽은 매트로 쓰는 디자인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