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맵시

자유게시판

이상한 게 권력이 되면, 그게 아방가르드가 되는 거죠

에디터의옷장·7.8·조회 53

요즘 아방가르드를 보면 참 웃긴 게, 예전에는 '저게 뭐야' 소리 듣던 것들이 이제 와서 '이게 힙하네'가 되더라고요. 물론 패션의 역사가 원래 그런 식으로 흘러왔지만, 유독 요즘 들어 그 레이블이 무분별하게 남용되는 느낌이에요.

  • 동대문 시장 가면 '아방가르드 니트'라고 팔고 있는데 보면 그냥 소매 길이가 기형적으로 길거나, 어깨에 구멍이 송송 뚫려 있는 수준. 물론 해체주의나 데콘스트럭션의 대중화라고 보면 반가운 일이지만, 정작 중요한 건 그 '낯섦'을 감당할 수 있는 맥락과 균형감각인데 거기까지 수입이 안 됐다는 게 문제. 대충 찢고 덜 꿰매면 아방가르드인 줄 아는 건 너무 슬픈 일이에요.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아방가르드를 코디에 풀어낼 때 가장 중요한 건 '힘 빼기'라고 생각하거든요. 예전에 매거진에서 일할 때 해외 컬렉션 사진 보면서 동료랑 이런 얘기했던 기억이 나네요. 일본 브랜드 중에 진짜 아방가르드의 정수는 꼬무 데 가르송 같은 라인이 아니라, 좀 더 사적인 감각에서 나오는 미야시타 타카히로의 초기 넘버 나인 솔로이스트 같은 거라고. 그때는 그게 기괴하다는 평도 많았지만, 지금 와서 보면 그랜드파더 칼라에 유목민 감성의 레이어드, 그리고 의도적으로 무너뜨린 실루엣 같은 건 보는 사람을 굉장히 불편하게 하면서도 뭔가 계속 쳐다보게 만드는 힘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요즘 길거리에서 보이는 아방가르드는 그런 불편함을 빼고 모양새만 가져오려는 게 너무 보여서 좀 씁쓸해요. 이게 무슨 말이냐면, 예를 들어 어깨가 솟은 퍼프 슬리브 자켓에 주름이 잡힌 와이드 팬츠를 입었는데, 신발을 컨버스 척테일러 올스타 클래식한 흰색으로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거. 그 순간 그 옷이 가진 긴장감이 다 풀어져 버려요. 아방가르드는 그 옷을 입었을 때의 어색함, 그걸 내가 소화해서 내 것으로 만드는 불편한 과정 자체가 스타일이 되어야 하는데, 대중적인 템으로 그걸 쉽게 타협해 버리니까 그냥 '이상한 옷 입은 사람'에서 멈추는 거죠.

  • 저는 아방가르드를 도전할 때 오히려 신발에서 더 긴장감을 줘야 한다고 봐요. 꼭 타비 부츠까지 갈 것 없이, 솔직히 타비는 이제 너무 사농공상의 아이콘이 되어버려서 식상하기도 하고. 저는 발목을 덮는 길이의 지퍼 부츠에 유광 소재가 섞인 걸 신거나, 아니면 과감하게 밑창이 두꺼운 기술적 스니커즈를 선택하는 편이에요. 그런 무게감 있는 신발에 위는 실루엣이 무너지는 듯한 코트를 걸치면 의외로 그 언밸런스가 꽤 멋있는 밸런스를 찾아주더라고요.

또 하나 중요한 건 소재의 대비예요. 요즘 한국에서 아방가르드 하면 죄다 검정색, 그것도 매트한 검정 니트나 면 소재로만 승부 보려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그냥 장례식장 가는 미니멀리스트지 아방가르드가 아니에요. 광택이 죽어 있는 울 소재랑, 바스락거리는 테크니컬한 나일론, 그리고 처지는 실루엣의 봄버 자켓 이렇게 충돌시키는 것만으로도 훨씬 현대적인 아방가르드가 완성되는데 말이죠. 그 미묘한 불협화음을 즐기지 못하면 그냥 '다크웨어'일 뿐이에요.

솔직히 마르지엘라가 너무 대중화되면서 '아방가르드'라는 단어가 '비싸고 괴상한 옷' 정도로 오염된 감이 크지만, 진짜 아방가르드는 근본적으로 '내가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옷이라는 구조물을 내 몸에 걸친다'는 태도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자세도 중요해 보여요. 어깨를 웅크리고 입으면 그냥 옷에 먹힌 사람이 되는데,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그 구조를 내 몸의 일부인 것처럼 걸어 다니는 순간 그게 진짜 스타일이 되는 거거든요. 여러분은 요즘 길거리 아방가르드, 어떻게 감상하고 계신지 궁금하네요.

댓글 1

  • 173솔루션7.8

    와 진짜 팩트만 쏟으셨네요 ㅋㅋㅋ 저도 동의하는 게, 옷에 구멍 숭숭 뚫어놓고 아방가르드라고 우기는 거 보면 그냥 미완성 샘플 같아서 웃기더라고요. 진짜 아방가르드는 실험정신 안에서도 결국 실루엣이 나와줘야 하는데, 요즘은 그냥 난해한 맛에 소비하는 느낌? 근데 이게 또 무서운 게, 결국 인플루언서 몇 명이 저거 입고 힙하다고 올리면 트렌드 돼서 아무나 막 입고 다니잖아요 ㅋㅋㅋ 특히 우리처럼 키 좀 작으면 기장 잘못 건드리면 옷이 나를 입은 꼴 돼서 웃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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