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맵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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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카이브 패션, 수집 그 이상의 무드가 된 것 같아서

무드보드미대·1시간 전·조회 37

요즘 맵시에서도 그렇고 인스타나 편집샵만 가도 아카이브 아카이브 하는데, 그냥 옛날옷 찾는 걸 넘어서 어떤 종교적인 분위기까지 생긴 거 같음. 나도 원래 마르지엘라 라인 보면 현행보다는 90년대나 00년대 초반 돌던 것들에 눈이 더 가는 편이긴 한데, 최근에 이게 좀 과열되면서 원래 아카이브가 주던 쾌감이 희석되는 느낌도 들고.

내가 아카이브 피스에 끌리는 건 단순히 '희귀함' 때문이 아니라, 그 옷이 만들어진 시절의 공기랑 그걸 만들던 사람의 고민이 실루엣에 더 선명하게 박혀 있어서거든. 예를 들어서 얼마 전에 구한 2000년대 초반 릭 오웬스 더스터 같은 경우는 지금 나오는 거랑은 또 다르게 어깨에서 팔로 떨어지는 선이 거의 조각에 가까울 정도로 급진적이었음. 마치 어둠 속에서 몸의 형태를 빚어내는 느낌? 소재도 지금처럼 테크니컬하기보단 좀 더 날것이고.

근데 요즘 아카이브 패션이 트렌드가 되니까 사람들이 그런 미묘한 텍스처나 빛바램의 깊이 같은 건 건너뛰고 그냥 '몇 년도 무슨 컬렉션' 그 타이틀만 좇는 느낌이 드는 거지. 당연히 나도 빈티지 샵에서 운명처럼 만나는 누렇게 바랜 오프화이트 셔츠의 소매 끝 닳은 부분에서 전율을 느끼는 타입이라, 그런 레퍼런스들이 대량으로 소비되는 게 좀 씁쓸하기도 해.

  • 90년대 마르지엘라의 그 해체된 듯한 봉제선들. 일부러 마무리를 엉성하게 남겨서 옷이 완성형이 아니라 진행형이라는 걸 보여주는 그런 디테일. 요즘은 그냥 해체주의의 '상징'으로만 소비되니까 원래 그 옷이 품고 있던 불완전함의 미학이 좀 죽는 느낌.
  • 시간이 지나면서 생기는 텍스처의 변질. 뻣뻣하던 면이 툭툭 떨어질 듯 얇아지고, 검정색이 회색빛으로 바래면서 생기는 그 뉘앙스. 이건 새 옷에선 절대 못 느껴. 옷이랑 나 사이에 시간이 끼어드는 그 공간감.
  • 냄새도 무시 못 해. 오래된 옷 특유의 서늘하고 약간 퀴퀴한 냄새. 이게 어떤 사람들한텐 그냥 냄새일 수 있는데, 나한텐 이 옷이 어디선가 오래 머물렀다는 증거로 다가와.

솔직히 아카이브 피스들 보면 체형 커버고 뭐고 그런 얘기할 거 없음. 그냥 실루엣 자체가 하나의 설치미술처럼 공간을 점유하는 거라. 예를 들어서 어깨가 확 떨어지는 오버사이즈 자켓은 그냥 몸을 감싸는 게 아니라, 내 몸 주변에 일정한 무드의 중력장을 만드는 느낌이야. 그 빈 공간 사이로 보이는 속옷의 레이어드나, 살짝 드러나는 손목 같은 게 은근히 중요한 거고.

그래서 요즘 생각하는 건, 아카이브 패션을 너무 박제된 유물처럼 대하기보단 그냥 계속 입고 부딪히면서 나만의 시간을 한 겹 더 쌓아가는 게 맞지 않나 싶음. 옷장에 모셔두기엔 그 옷들이 원래 품었던 당시의 에너지가 너무 강렬하니까. 그냥 오늘 퇴근길에 비 오는데, 내가 가진 오래된 셔츠의 얇아진 소재로 비를 좀 맞아볼까 그런 생각도 들었음. 물들고 바래고 하는 그 연속이 진짜 아카이브를 완성하는 거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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