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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요즘 엘리베이티드 베이직, 저는 조금 회의적이에요.

빈티지록셔리·1일 전·조회 22

안녕하세요, 요즘 날이 제법 쌀쌀해져서 여름 내내 실크 린넨 셔츠만 고집하던 저도 슬슬 캐시미어를 꺼내고 있어요. 오늘도 70년대 스코틀랜드에서 만든 올리브 그린 램스울 가디건을 걸치고 나왔는데, 문득 생각난 게 있어서 이렇게 끄적여봅니다.

요즘 편집샵이나 SNS에서 "엘리베이티드 베이직"이라는 말을 참 많이 쓰더라고요. 백화점 가보면 그레이 마를 니트에, 셀비지 데님에, 미니멀한 독일제 트레이닝화 신은 젊은 친구들이 진열대 앞에 줄 서 있던데... 솔직히 저는 그 단어를 들을 때마다 약간 미묘한 기분이 들어요. 고급스러운 기본템, 품격을 높인 미니멀리즘, 뭐 그런 뜻이잖아요. 그런데 이게 결국은 "값비싼 평범함"을 추구하는 건 아닌가 싶어서요.

제가 작년에 우연히 들른 도쿄의 한 빈티지 숍에서 본 일이 있어요. 점원이 1990년대 생산된 마지 로프 숄더 니트를 꺼내주면서 "요즘 엘리베이티드 룩 찾는 분들이 많이 사가세요"라고 하더라고요. 듣는 순간, 아... 이게 유행어가 되어버렸구나 싶었어요. 사실 마지의 그 니트는 원래 유니폼 같은 실용성에서 출발한 건데, 어느 순간 고급 기본템이라는 프레임에 갇혀버린 느낌이었달까요. 물론 퀄리티는 정말 훌륭했어요. 30년 가까이 묵은 울이지만 손목 시보리 부분은 하나 풀리지 않았고, 목둘레 라인도 세월에 오히려 부드러워졌더군요. 그래서 더 안타까웠어요. 그렇게 좋은 옷이 겨우 "엘리베이티드"라는 마케팅 언어 속에 소비되고 있다는 게요.

제 생각에 진짜 기본템은 단순히 고가의 소재나 깔끔한 실루엣만으로 완성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시간이 쌓여야 해요. 세탁을 여러 번 거치면서 조금씩 길이감이 줄어들고, 팔꿈치 부분이 은은하게 닳고, 그래서 결국 그 사람 몸에 맞춰져야 비로소 기본이 되는 거죠. 저는 그렇게 길들여지는 과정을 좋아하는데, 요즘 엘리베이티드 베이직은 그 과정을 건너뛰고 완성된 상태만 빌려 입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물론 그 자체로 깔끔하고 세련된 건 분명한데, 어딘가 모르게 진정성에 대한 의문이 자꾸 들어요. 옷장을 열었을 때 나와 대화를 나눈 흔적이 보이지 않는, 그냥 예쁘게 접힌 새 옷들만 가득한 느낌이랄까.

며칠 전에 제 지인이 입고 온 유니클로 U 라인 진을 보고 좀 놀랐어요. 그 친구는 "요즘 돈 많이 안 들이고도 엘리베이티드 룩 가능하지 않냐"면서 웃더라고요. 맞아요, 사실 그게 핵심이에요. 저렴한 옷도 충분히 훌륭할 수 있고, 중요한 건 어떻게 입고 다듬느냐라는 걸 그 옷이 보여주더라고요. 바지 밑단이 살짝 닳아 있었는데, 그게 오히려 공장에서 일부러 만든 빈티지 워싱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품위 있어 보였어요. 그 친구는 그 바지를 마치 헤리티지 브랜드의 청바지 다루듯이 조심히 세탁하고 드라이클리닝도 맡긴다는데, 그런 태도 자체가 진짜 엘리베이션 아닌가 싶어요.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저는 엘리베이티드 베이직이라는 흐름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에요. 퀄리티 있는 소재와 정제된 디자인을 추구하는 건 늘 멋진 일이니까요. 다만 그게 브랜드가 내세우는 컨셉이나 가격표로 규정되는 순간, 뭔가 본질을 놓치는 것 같아서 아쉽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어쩌면 우리는 그냥 "내 몸에 길든 옷"이라는 말이 더 익숙한 세대라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아버지 서재에서 풍기던 낡은 가죽 의자 냄새, 어머니가 오래 걸치셨던 트렌치코트의 계절 냄새 같은 것들... 그런 시간의 결을 빼고 나면, 엘리베이티드 베이직도 결국 텅 빈 기호에 불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글이 길어졌네요.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요즘 그 엘리베이티드 룩을 즐겨 입으시는 분들도 계시겠고, 저처럼 빈티지에서 비슷한 감성을 찾으시는 분들도 계실 테고요. 저는 오늘 밤엔 낡은 브로그 슈즈에 구김 간 린넨 바지 입고 산책이나 가보려고요. 그게 제가 생각하는 엘리베이션입니다.

댓글 1

  • 쿨톤여름이10시간 전

    와 진짜 그 정직한 맛에 입는 거지 ㅋㅋㅋ 최근에 엘리베이티드 베이직 브랜드 몇 군데 입어봤는데 뭔가 꼭 하나씩 디테일에서 과해서 결국에는 오래된 랄프로렌 데님 셔츠 꺼내게 되더라. 특히 여름 쿨톤 입장에선 그 미묘한 회색기 섞인 페이디드 컬러가 새 옷에서는 절대 안 나와서 빈티지 숍 전전하게 됨 ㅠ 에이징 된 톤 다운된 네이비나 톤업된 웜그레이는 진짜 보자마자 지르는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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