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맵시

코디 고민

장마 끝나면 본격 더위인데, 여름 데이트룩 소재로 승부 보는 거 어떨까요.

빈티지록셔리·1시간 전·조회 49

일기예보 보니까 이번 주만 지나면 진짜 찜통더위가 온다네요. 문득 작년 여름 데이트 때 입었던 옷들을 꺼내봤는데... 어휴, 왜 그리 죄다 통이 팔랑거리는 합성섬유 투성이인지 모르겠어요.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습니다. 데이트 상대방이야 뭐 티 안 내겠지만, 저 스스로가 좀 민망해지더라고요. 나이도 있고 하니 이제는 좀 다르게 접근해야겠다 싶었죠.

그래서 요 며칠 밤마다 옷장 정리한다고 난리였는데요. 결국 제가 내린 결론은 '소재'였어요. 유행이라지만, 등산할 때나 입는 걸 굳이 데이트 때 입고 나가고 싶진 않은 거 있잖아요. 아무리 날이 더워도 저는 기본적으로 땀이 많이 나는 체질이 아니라서, 오히려 얇고 비침이 은은한 천연 소재가 덥지 않더라고요. 특히 여름 여자 데이트룩에는 적어도 내 몸에 안 붙는, 숨 쉬는 옷을 걸쳐야 한다는 게 제 지론이에요.

제일 자주 손이 가는 건 작년에 우연히 일본 빈티지 숍에서 건진 70년대 말쯤으로 추정되는 실크 노방 블라우스예요. 무릎까지 오는 풀오버 형태인데 소매만 살짝 퍼프로 잡혀있고, 나머지는 바람이 들어오는 대로 흘러내리는 실루엣이거든요. 색상은 앤틱한 오프화이트인데, 빛 아래서 보면 마치 딸기우유에 물감 한 방울 떨어뜨린 것처럼 아주 옅은 핑크빛이 은은하게 감돌아요. 앞트임이 깊어서 단추를 두 개 정도 풀면 쇄골 라인이 살짝 드러나고요. 여기에 와이드 코튼 팬츠? 아니, 저는 차라리 사선으로 흐르는 30년대 느낌의 레이온 플리츠 스커트를 제안하고 싶어요. 밑단이 걸을 때마다 종아리에 닿았다 떨어지는 그 촉감이 진짜 예술이거든요. 여기에 스트랩 얇은 샌들이나, 아니면 발등이 깊게 파인 플랫슈즈를 신으면 거울 보면서도 '아, 이거지' 소리가 절로 나요.

액세서리는 저는 깔끔한 게 좋더라고요. 지난번에 석류석이 박힌 80년대 빈티지 금침 브로치를 블라우스 깃에 달고 나갔더니, 동행자가 제 옷이 아니라 브로치만 빤히 쳐다보더라는... 좀 웃픈 에피소드도 있었고요. 농담이고요. 아무튼, 여름 여자 데이트룩 때문에 고민이시라면, 일단 옷장에서 폴리에스터랑 나일론이 섞인 놈들은 우선 한 번 옆으로 치워보시는 걸 추천드려요. 그 공간에, 얇은 코튼 보일 셔츠나 아일렛 자수 디테일이 들어간 린넨 원피스 하나 들여놓는 거죠. 린넨은 까슬거린다고 싫어하시는 분들도 계시던데, 저는 그 자연스러운 주름마저 빈티지 럭셔리 무드의 완성이라고 생각해서 오히려 기계로 다림질 안 하고 손으로만 쓸어서 걸어둡니다.

날이 제법 선선해지는 저녁에는 어깨에 실크 저지 가디건 하나 걸치면 완벽해요. 꼭 뭘 껴입는 게 아니라, 살짝 걸친다는 느낌으로요. 소매에 시보리 안 들어간, 그냥 일자로 뚝 떨어지는 판초코트처럼 생긴 걸 찾으시면 실패 없으실 거예요. 저는 이 세팅에 진주 귀걸이는 절대 안 해요. 너무 교과서적인 느낌이라서요. 대신, 귀에는 아무것도 안 하고 손목에 뱅글 팔찌 여러 개를 한꺼번에 끼우는 편이에요. 은은 아니고 14k 골드로 약간 오래된 느낌 나는 걸로 중첩하면, 그냥 흰 티에 청바지 입어도 태가 다르거든요.

사실 며칠 전부터 제 머릿속은 벌써 가을 니트를 향해 가고 있긴 한데(실크 울 혼방이라던가... 그런 쪽으로요), 지금 당장의 이 후덥지근함 속에서 우리가 느껴야 할 작은 사치라는 건 결국 소재에서 오는 체감 온도와 촉감이 아닐까 해요. 아, 글이 너무 길었죠? 죄송합니다. 오늘은 괜히 찻잔 받침에 손가락을 가지런히 모으고 싶어지는 그런 무드라서 한참 장롱 깊은 곳에 모셔뒀던 90년대 레이스 블라우스를 꺼내 입으며 이 생각을 곱씹다 보니 주절주절 쓰게 됐네요. 다들 이번 주 데이트 있으시면, 꼭 옷에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더위 맞서보자는 의미에서 적어봤어요.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댓글을 쓰려면 로그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