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맵시

코디 고민

환절기 비즈니스 캐주얼, 결국은 소재와 태도더라고요

빈티지록셔리·1시간 전·조회 57

며칠 새 아침저녁 공기가 제법 선선해져서, 출근길에 트렌치코트 한 번 걸칠까 말까 고민되는 그 애매한 날씨가 찾아왔네요. 마침 저도 요즘 회사에서 드레스코드가 살짝 풀리면서 '비즈니스 캐주얼'이라는 말랑말랑하지만 또 엄연히 무게감은 챙겨야 하는 함정 같은 키워드를 두고 옷장 앞에서 멍하니 서 있는 시간이 늘었어요. 정장만 입자니 너무 딱딱하고, 그렇다고 니트에 치노 팬츠만 걸치자니 어디 회식 자리에서 괜히 가벼워 보일 것 같고... 이 고민, 혹시 요즘 다들 한 번쯤 하시지 않나요.

제가 결국 내린 답은, 이런 애매한 때일수록 옷 자체의 디자인보다 소재와 핏이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해준다는 거였어요. 예를 들어 요즘 제가 거의 매일같이 손이 가는 조합이 있는데, 90년대 후반쯤 이태리에서 생산된 헤링본 패턴의 울 블레이저예요. 요즘 신상들과는 다르게 어깨 패드가 거의 없이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실루엣이라 블레이저 특유의 권위적인 느낌이 많이 죽거든요. 거기다 직조가 촘촘한 모직 특유의 약간 거친 듯하지만 은은하게 빛나는 텍스처가, 그냥 흰 티셔츠 위에 걸쳐도 옷이 알아서 '캐주얼한데 함부로 하진 않은' 톤을 잡아줘요. 안감까지 실크로 처리된 걸 보면 당시 제작자가 이 옷을 걸칠 사람의 하루 전체를 배려했구나 싶어서 기분마저 좋아지고요.

환절기 레이어드 비결 하나 말씀드리자면, 이너는 과감하게 소재를 섞어서 단순함을 깨는 거예요. 전 블레이저 안에 보통 흰색이나 아주 연한 아이보리 실크 혼방 크루넥 니트를 입는데, 여기서 중요한 건 니트 조직이 너무 성글거나 두껍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에요. 그래야 블레이저를 벗었을 때도 니트 자체가 실크 특유의 유연한 광택으로 살짝 격식을 갖춰 주거든요. 거기다 하의는 너무 정장 바지보다 차라리 빈티지 리바이스 505 같은 다크 인디고 데님을 입고, 밑단은 슬릿이 들어간 레더 로퍼로 마무리하는 거죠. 청바지라도 워싱이 심하지 않고 원단이 두툼한 셀비지 데님이면, 오히려 캐주얼의 영역에서도 '오래된 것에 대한 존중'이라는 우회로로 품격을 챙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신발은 여기에 코드반 컬러 양말 한 켤레로 밋밋함을 끊어주면 발목까지 지루할 틈이 없고요.

사실 비즈니스 캐주얼의 가장 까다로운 지점은 결국 '전달하고자 하는 이미지가 뭐냐'에 달린 것 같아요. 무조건 안전하게만 가려고 하면 평범한 사람이 되어 버리고, 너무 튀면 또 눈치가 보이고 말이죠. 그럴 때 구조 자체가 클래식하지만 연식이 오래된 아이템들은 신기하게도 이 중간 지점을 아주 우아하게 통과하더라고요. 지금 제 옷걸이에 걸린 80년대 말 버버리 트렌치코트 안쪽에 이름 석 자가 수놓아진 걸 손으로 한 번 쓸어볼 때면, 이 코트의 원주인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며 이 코트를 걸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괜히 혼자 미소가 나네요.

아, 그리고 요즘 같은 간절기에는 아침에 나갈 때 살짝 걸칠 수 있는 스카프 하나도 꽤 쓸모가 많아요. 저는 헤지스나 닥스에서 나온 오래된 실크 트윌리 스카프를 즐겨 쓰는데, 주머니에 접어 넣었다가 저녁에 바람이 좀 불면 꺼내서 목에 두르면 그 작은 천 조각 하나로도 옷차림 전체가 훨씬 생각해보고 나온 사람처럼 비춰져요. 결국 다 이런 작은 부분에서 분위기가 결정되는 거 아니겠어요. 길게 주절거렸는데, 다들 각자 옷장 속에서 오늘의 고민을 덜어줄 빈티지한 단짝 하나쯤 찾으시길 바라면서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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