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맵시

코디 고민

환절기 비즈니스 캐주얼, 결국 소재 싸움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빈티지록셔리·1시간 전·조회 47

요즘 아침저녁으로 꽤 쌀쌀해져서 아침에 옷장 앞에서 멍하니 서 있는 시간이 길어지더라고요. 특히 비즈니스 캐주얼 날엔 정장처럼 풀수트는 부담스러운데 그렇다고 너무 편하게 입자니 클라이언트 미팅이 잡혀 있으면 신경 쓰이고... 이런 애매한 간절기가 제일 골치 아픕니다.

사실 비즈니스 캐주얼이라는 말 자체가 좀 함정이에요. 다들 '블레이저에 슬랙스, 니트나 셔츠 매치하면 끝 아냐?' 싶지만 막상 거울 앞에 서보면 어딘가 모르게 밋밋하거나 반대로 너무 과한 느낌이 들기 쉽거든요. 그래서 저는 요즘 아예 소재로 승부 보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습니다.

예를 들면 요즘 같은 날씨엔 실크 혼방 터틀넥을 베이스로 깔고 그 위에 텍스처가 살아 있는 헤리티지 브랜드의 울 가디건을 걸치는 걸 꽤 즐겨 입어요. 여기에 테일러드 재킷까지 더하면 상체는 정리된 느낌이 나면서도 재킷 벗었을 때 실크 특유의 은은한 광택이랑 울 니트의 조직감이 따로 또 같이 살아서 괜히 옷 잘 입는 사람 같은 분위기가 나더라고요. 물론 저 혼자만의 착각일 수도 있습니다만...

  • 캐시미어 니트: 얇게 짠 2ply나 4ply 정도면 재킷 안에 입어도 부해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캐시미어는 아무리 얇아도 보온성이 좋아서 실내 난방이 빵빵한 곳에선 땀 날 수 있으니 그날 동선을 잘 생각해봐야 해요. 저는 주로 외부 미팅이 길 것 같은 날에 픽합니다.

  • 실크 셔츠나 블라우스: 저는 칼라가 있는 클래식한 디자인을 선호하는 편인데, 광택이 너무 강한 것보다는 샌드워시드 실크나 크레이프 드 신 느낌의 매트한 텍스처가 비즈니스 캐주얼엔 훨씬 잘 어울리더라고요. 화려하지 않은데 가까이서 봤을 때 확실히 값진 소재라는 게 느껴지는 그런 걸로 고르면 실패 확률이 줄어듭니다.

  • 울 트윌 슬랙스: 면바지도 좋지만 구김이나 처짐 때문에 너무 캐주얼해 보일 때가 있어서, 저는 차라리 모직 트윌이나 개버딘 느낌의 드레이프가 잘 잡히는 바지를 즐겨 입어요. 실루엣은 와이드보다는 스트레이트나 살짝 테이퍼드가 아무래도 무난하고요.

하의까지 신경 쓰다 보면 신발은 또 고민되실 텐데 로퍼 하나만 해도 가죽 피니싱이랑 라스트에 따라 격조가 확 달라지니까, 페이턴트처럼 광이 확 나는 것보단 박스 캐프나 송아지 가죽 고유의 결이 살짝 느껴지는 쪽이 빈티지 럭셔리 느낌으로 잘 녹아들더라고요. 에드워드 그린이나 존롭 같은 올드 스쿨 브랜드에서 영감을 받아도 좋고요.

어머니 세대에서 물려받은 빈티지 브로치 하나쯤 라펠에 꽂아도 은근히 포인트가 됩니다. 저는 작년에 우연히 빈티지 숍에서 주워온 60년대 트리파리 클립을 가디건 어깨 쪽에 살짝 걸치는 식으로 쓰고 있는데, 그 가게 사장님 왈 "이런 디테일 하나가 평범한 니트를 아카이브 피스로 바꾼다"고... 물론 영업 멘트였겠지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요.

정리하자면 비즈니스 캐주얼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적당히'가 아니라 '제대로'라고 생각합니다. 평범한 실루엣이라도 직조가 단단한 모직, 염색이 깊은 실크, 오래 신어도 형태 안 무너지는 구두 같은 것은 멀리서 봤을 땐 티가 안 나도 가까이 앉았을 때 분명히 다르게 읽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요즘 같은 환절기야말로 레이어드로 소재의 깊이를 보여주기 가장 좋은 시즌인 것 같습니다.

다른 분들은 비즈니스 캐주얼 어떻게 조합하시는지 궁금하네요. 저는 확실히 나이가 들수록 옷의 겉모양보다 안쪽의 구성이나 소재를 먼저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예전 같으면 "대충 검정 슬랙스에 흰 셔츠면 되지" 했을 텐데, 이제는 그 흰 셔츠 하나도 면의 밀도와 칼라의 높이를 따지게 되니까... 이게 철이 든 건지 그냥 꼰대가 되어가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댓글을 쓰려면 로그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