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맵시

정보 · 꿀팁

아크네 스튜디오, 미니멀의 허와 실을 몇 년 입어보고 느낀 단상들입니다.

빈티지록셔리·2시간 전·조회 54

솔직히 미니멀룩이라고 하면 흰 셔츠에 검은 슬랙스 같은 공식을 떠올리기 쉬운데, 제 경험상 실루엣만 단순하다고 다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옷 자체가 단출해지니까 결국 시선이 옷의 소재와 컷 하나하나에 꽂히는데, 그게 정말 냉정하더라고요. 저는 오히려 미니멀해질수록 캐시미어 니트의 밀도나 코튼 셔츠의 촉감 같은, 본질적인 것에 더 집착하게 되는 타입이라 아크네 스튜디오라는 브랜드를 참 오래 들여다봤습니다. 오늘은 제가 실제로 구매해서 최소 2년 이상 입어본 아이템들을 중심으로, 이 브랜드의 ‘솔직한’ 면면을 좀 길게 풀어볼까 합니다.

  • 먼저 아크네의 데님. 이거는 정말 동의하기 어려운 호불호가 갈리더라고요. 저는 1996 스트레이트 진을 3년째 입고 있는데, 초기 6개월은 정말 이게 옷인지 갑옷인지 모를 정도로 뻣뻣했습니다. 일본산 셀비지 데님 특유의 그 까끌까끌한 질감과 생지 특유의 빳빳함이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조여서, 세탁을 몇 번이고 반복하면서 길들여야 했어요. 근데 이 빳빳함이 1년 정도 지나면서부터 마법처럼 제 체형에 맞춰 주름이 잡히고, 엉덩이 라인과 허벅지 앞쪽에 자연스러운 페이딩이 올라오는데 그때부터는 진짜 돈 값을 하더군요. 밑단 체인 스티치도 로프 염색이라 세월이 지날수록 바스락거리는 느낌이 아니라 은은하게 색이 빠지면서 빈티지 데님 특유의 맛이 살아났습니다. 다만, 제가 얇은 핀 스트라이프 셔츠와 같이 입을 때는 이 데님이 너무 무겁게 느껴져서 윗도리와 밸런스가 깨지는 느낌을 좀 받았어요. 아크네 데님은 상의를 최소한 중량감 있는 옥스퍼드 셔츠나 두꺼운 울 니트로 받쳐주지 않으면 괜히 하체만 따로 놀더라고요.

  • 아, 기장 얘기 진짜 공감합니다. 오버셔츠라는 게 결국 '오버'가 주는 낙차와 여유가 생명인데, 이게 키와 맞물리면 단순히 크게 입는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서요. 저도 예전에 어깨는 딱 맞는데 기장이 애매하게 엉덩이를 반쯤 덮는 린넨 오버셔츠 하나 잘못 들였다가, 허리선이 아예 사라지면서 상체가 통짜로 변하는 대참사가 났던 적이 있습니다. 아크네 셔츠들은 이 '애매함'을 정말 날카롭게 디자인하는 것 같아요. 제가 소장 중인 페어뷰 셔츠는 일반적인 슬림핏이 아니라 가슴과 어깨를 아주 넉넉하게 잡아준 채로 기장은 과감하게 크롭을 시켰거든요. 이게 칼날 같은 기장감 덕분에 하이웨스트 팬츠와 만나면 다리를 엄청 길어 보이게 만드는 착시 효과를 줍니다. 소재도 꼬임이 강한 코마사 원단 특유의 까슬까슬한 표면이 있어서, 흰색임에도 불구하고 속옷이 비치거나 너무 몸에 달라붙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단, 이걸 혹시 드라이클리닝 맡기실 분들은 꼭 전문점에 맡기셔야 해요. 저는 동네 세탁소에 맡겼다가 덮개 단추에 미세한 스크래치가 나서 깊은 빡침을 느낀 뒤로는 그냥 손세탁으로 조심스럽게 관리 중입니다.

  • 다음으로 니트웨어는 아크네의 진짜 아이덴티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올 겨울에 그 유명한 마하라자 니트가 아니라, 조금 덜 알려진 텁헤드 울 가디건을 들였어요. 이거 진짜... 만지면 그냥 탄성이 장난이 아닙니다. 보통 이런 두꺼운 니트는 무게 때문에 어깨가 처지기 마련인데, 이 가디건은 모헤어와 울 혼방률이 기가 막혀서 부드럽지만 어깨 실루엣이 흐트러지지 않고 딱 잡아주는 구조감이 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모헤어 특유의 보풀이 조금 올라오긴 하는데, 저는 오히려 이 복슬거림이 옷에 깊이감을 더해준다고 느꼈습니다. 마치 오래된 골동품 카디건 같은 멋이랄까요. 다만, 이너를 입을 때는 결이 고운 실크 소재 아니면 정말 까슬거림이 장난 아니라서 맨살에 절대 입으시면 안 됩니다. 저처럼 예민한 피부면 하루 종일 긁게 되는 불상사가 생기더군요.

  • 마지막으로 아크네 스카프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기본기'에 충실한 브랜드라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그런 물건이었습니다. 제가 이번 시즌에 구매한 체크 울 머플러는 변죽이 말리지 않게 이중으로 밀착 마감이 되어 있고, 프린지의 꼬임도 몇 번을 감아도 풀리지 않을 정도로 강도가 좋아요. 색감도 톤 다운된 핑크와 브라운의 배색이 절묘해서, 제가 가진 올리브 그린 발마칸 코트에 두르면 단숨에 1980년대 파리지엔 빈티지 감성이 납니다. 뭐랄까, 이 브랜드의 강점은 결국 '유행을 타지 않는 데서 오는 값어치'라는 생각이 들어요. 옷장에 5년째 걸려 있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오히려 빈티지가 쌓이는 느낌. 그게 제가 아크네를 쉽게 못 버리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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