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울 · 득템
마리떼 저버에서 건진 90년대 아카이브 무드 자켓, 그리고 긴 단상
안녕하세요, 빈티지록셔리입니다. 오랜만에 하울 게시판에 글 남깁니다. 사실 최근 몇 년 사이에 마리떼 저버 같은 브랜드를 다시 꺼내 입게 될 줄은 몰랐네요. 제 나이 서른 중반을 넘기고 나니까 슬슬 옷장 한켠에 잊고 있던 90년대 말 감성들이 다시 그립더군요. 그 시절엔 고등학생이라 살 엄두도 못 냈던 것들을 이제야 조금씩 손에 넣고 있습니다.
이번에 데려온 건 1998년도 쯤으로 추정되는 네이비 컬러의 투버튼 린넨 혼방 블레이저입니다. 정확한 연식을 단정짓긴 어려운데, 안감에 박힌 실버 톤 워싱 태그 상태나 어깨 패드가 들어간 실루엣을 보면 아마 제 추측이 크게 빗나가진 않을 거예요. 마리떼 저버 특유의 디스트레스드 디테일이 살아있지만 전체적으로 옷이 주는 텐션은 꽤 클래식한 편입니다.
- 소재감: 겉감은 리넨과 레이온이 7:3 정도로 블렌딩된 느낌인데, 요즘 나오는 저가형 린넨처럼 까슬거리지 않고 손끝에 닿는 촉감이 제법 보드랍습니다. 아무래도 20년 넘는 세월 동안 옷이 풀리면서 실크처럼 광택이 조금 죽고 차분해졌네요. 이런 건 빈티지가 아니면 절대 못 따라잡는 부분이죠.
- 디테일: 칼라는 노치드 라펠인데, 라펠 폭이 지금 유행하는 하우스 스타일들보다 약간 좁아요. 아카이브 피스 특유의 디테일인지, 단추 구멍은 손바느질로 대충 꿰맨 듯한 러프함이 남아있고요. 개인적으로는 이런 허술한 듯 치밀한 마감을 볼 때마다 마리떼 저버의 철학이 떠올라서 좋습니다. 옷을 완벽하게 마무리하지 않고 입는 사람이 완성시키게 두는 느낌.
- 실루엣: 오버사이즈라고 하기엔 애매하지만, 확실히 제가 평소에 입는 이탈리아제 48 사이즈보다 어깨가 1cm 정도 넓고 가슴 둘레도 여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안에 얇은 캐시미어 니트를 받쳐 입으니까 90년대 미니멀리즘 무드가 꽤 잘 살더군요.
사실 요즘 마리떼 저버가 다시 유행하면서 리셀가가 말도 안 되게 뛰던데, 저는 그냥 제가 보고 자란 세대의 향수를 느끼려고 접근한 케이스라 큰 부담은 없었습니다. 가격대는 3만원대 중후반 정도였어요. 이 브랜드의 초기 아카이브를 모르시는 분들은 '그냥 낡은 옷 아니야?'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이 옷의 다트 절개선 하나만 봐도 그 당시 프랑스 테일러링에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알 수 있거든요.
다만 주의할 점 하나 말씀드리자면, 이런 빈티지 린넨 자켓은 처음 입기 전에 반드시 스팀 처리를 해줘야 합니다. 저는 어제 받자마자 스팀 다리미로 충분히 섬유 결을 살려주고 걸어뒀는데, 오늘 아침 출근할 때 보니 지난 20년 동안 접혀 있던 주름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차분한 광택이 돌더군요. 빈티지를 고를 때 중요한 건 결국 '보존 상태'와 '소재 복원력'이라는 걸 다시금 느꼈습니다.
여담이지만, 이 자켓을 입고 근처 카페에 갔는데 점원이 '옷 정말 예쁘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사실 요즘 길거리에서 보이는 과한 로고 플레이나 스트릿 브랜드들 사이에서 이런 절제된 90년대 피스는 오히려 더 돋보이는 법이에요. 나이가 들어도, 유행이 몇 바퀴를 돌아도 결국 제 손에 남는 건 이런 헤리티지가 있는 옷들일 거란 생각이 듭니다.
혹시 맵시 분들 중에도 옛날 마리떼 저버, 혹은 그 시절 프렌치 캐주얼 브랜드 좋아하셨던 분들 계시면 같이 이야기 나눠요. 아카이브 피스 구별하는 재미도 쏠쏠하네요. 다들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