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맵시

오늘의 착장

초봄 밤공기에 어울리는 고딕 무드, 오랜만에 꺼낸 빈티지 벨벳 코트

빈티지록셔리·1시간 전·조회 40

요즘 같은 환절기에 밤공기가 제법 선선해서, 낮에는 좀 부담스러울 수 있는 아이템도 저녁에는 무리 없이 소화가 되더라고요. 오늘은 오랜만에 장롱 깊숙이 넣어둔 벨벳 코트를 꺼내 입었습니다. 정확한 연식은 알 수 없지만, 안쪽 택이나 봉제 방식으로 미뤄보면 아마 90년대 중후반쯤 영국이나 유럽 쪽 소규모 공방에서 나온 여성복 같아요. 원단이 정말 깊고 차분한 버건디 컬러인데, 광택이 과하지 않으면서도 움직임에 따라 음영이 은은하게 살아서 꼭 밤의 정원 같은 느낌을 줍니다.

안에는 빈티지 숍에서 건진 80년대 초반쯤으로 추정되는 블랙 실크 블라우스를 받쳐 입었어요. 칼라가 서 있는 형태에, 프릴이 목선을 따라 가늘게 이어지는데 과하지 않아서 좋더라고요. 요즘 나오는 것들처럼 화려한 레이스 장식 없이 아주 섬세한 스모킹 디테일로만 잡아놓은 거라, 오히려 빈티지 특유의 고급스러움이 묻어납니다. 손목 부분은 좁게 여미는 커프스에 진주 단추가 달려 있는데 하나가 없어서 수선 맡기려고 아껴두고 있어요.

하의는 단순하게 하이웨스트 블랙 울 트라우저에 발목까지 오는 레이스업 부츠 신었는데, 카프 길이가 긴 편이 아니라서 벨벳 코트와의 밸런스를 맞추기가 좀 어렵더군요. 솔직히 이 코트의 길이가 발목 바로 위까지 오는 맥시 기장이라, 신발을 뭘 신느냐에 따라 전체 실루엣이 극단적으로 갈려요. 처음에는 굽이 있는 플랫폼 슈즈를 신어볼까 했는데, 아무래도 부츠 쪽이 더 클래식한 고딕 무드에 가깝게 떨어져서 이걸로 골랐습니다. 연식은 대략 2000년대 초반 이탈리아 제품 같은데, 가죽 피딩을 몇 번 해줬더니 아직 윤기가 살아있네요.

액세서리는 평소엔 진주나 옐로골드를 고집하는 편인데, 오늘만큼은 실버 톤의 빈티지 펜던트 목걸이를 꺼냈어요. 중앙에 작은 오닉스와 가넷이 세팅된 빅토리아풍 디자인인데,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은세공 디테일이 애틋해요. 정확한 연식은 감정사에게 들은 건 아니지만 적어도 70년대 이전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고딕이나 고스 무드를 제 취향으로 녹여내려면 결국 컬러와 소재의 깊이를 얼마나 잘 살리느냐에 달렸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전에는 올블랙에만 집착했다면, 이제는 버건디나 딥 퍼플, 포레스트 그린 같은 묵직한 색감의 벨벳이나 태피터 실크 같은 직물을 얼마나 절제해서 쓰느냐가 관건이더라고요. 결국 소재 하나가 전체 실루엣을 지배하는 법이고, 그 소재의 드레이핑 상태나 세월감이 무분별한 디테일보다 훨씬 큰 몫을 하는 것 같습니다.

  • 추운 줄 알고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목에 땀 살짝 났는데, 실크 블라우스 안쪽으로 스팀 흡수가 빨라서 생각보다 견딜만했어요.
  • 벨벳 코트는 보관할 때 꼭 패딩 처리된 행거 쓰고, 벨벳 결 반대 방향으로 브러싱해주면 세월이 가도 윤기 유지됩니다. 저는 시즌 오프 때마다 한 번씩 통풍시키면서 먼지 제거만 해주는 편이에요.
  • 부츠 밑창에 오늘 살짝 금이 간 것 같아서 주말에 구두 수선소 가야겠네요. 리졸링 한 번 제대로 받으면 앞으로 몇 년은 더 신을 텐데, 요즘 수선 비용이 꽤 올라서 고민입니다.

오늘처럼 서늘한 밤이 계속된다면, 이런 빈티지한 무드 자주 풀어내볼까 싶네요. 벨벳이나 벨루어 코트가 장롱에 잠자고 계신 분들, 꼭 한 번 꺼내 입어보세요. 생각보다 지금 날씨에 딱입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댓글을 쓰려면 로그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