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착장
비 오는 줄 모르고 나왔네, 바람막이 하나로 버티는 중
아침에 날씨 좀 흐리길래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점심쯤부터 슬슬 빗방울 떨어지더라. 근데 우산이 없어. 가방에도 없고. 그냥 바람막이 후드 뒤집어쓰고 걸었는데 이게 또 나름대로 분위기 있더라.
오늘 입은 바람막이는 유니클로U에서 작년인가 나온 거. 블랙도 아니고 네이비도 아닌 애매한 차콜 그레이. 이 컬러가 진짜 별거 아닌데 별거다. 바막 특유의 스포티한 느낌을 딱 죽여주면서도, 핏이 적당히 오버해서 꼬질해 보이지 않음. 소재는 약간 종이 같은 질감이라고 해야 하나, 고밀도 나일론인데 보풀 안 일어나고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심하지 않아서 좋더라.
인쪽에는 흰색 반팔 티 하나 입었고, 하의는 코스 와이드 슬랙스. 예전에 샀던 건데 기장을 좀 줄였어. 바막이 엉덩이 반쯤 덮는 길이라서, 슬랙스 허리 라인이 살짝 보일락 말락. 이게 밋밋한 실루엣에 리듬감을 줘서 꽤 만족스러움. 신발은 그냥 살로몬. 비 오는 날엔 이 조합이 제일 무난하다.
근데 포인트는 역시 컬러 톤인 것 같아. 차콜 바막에, 아이보리 티, 연회색 슬랙스, 여기에 신발만 블랙으로 무게 잡아주니까 전체적으로 톤 다운된 그레이 스케일이 완성됨. 우산도 없는 주제에 괜히 분위기 있게 걸어봤다.
아, 참고로 이 바람막이 안감은 메쉬로 되어 있어서 그런지 오늘처럼 습한 날에도 안에 끼는 느낌이 덜하더라. 바람은 적당히 막아주는데 통기성이 좋아서 초여름까지도 꽤 입게 됨. 혹시나 바막 알아보는 사람 있으면 오버핏 찾지 말고 세미 오버로 가라고 말해주고 싶음. 너무 크면 바막 특유의 맛이 없어지더라. 적당히 어깨선 떨어지고, 팔통도 적당히 여유 있는 정도면 충분해. 그 이상은 그냥 판초 같고.
비는 아직도 좀 오는데, 그냥 이대로 커피나 하나 사서 들어갈까. 바막 하나 믿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