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맵시

오늘의 착장

크롭 팬츠, 다들 어떻게들 입고 계신가요. 저는 이번 시즌 거의 매일 꺼내 입은 것 같아서 올려봅니다.

빈티지록셔리·48분 전·조회 37

사실 며칠 전부터 저녁 공기가 좀 달라졌더라고요. 낮에는 아직 덥지만 아침저녁으로 스산한 바람이 불면, 이 길이 애매한 바지가 딱 좋은 것 같아요. 발목이 그대로 드러나니까 여름 감성을 아직 포기 못한 느낌이면서도, 너무 짧은 쇼츠보다는 확실히 가을 무드에 가까워지는 묘한 매력이 있어요.

제가 요즘 자주 입는 건 작년인가 재작년쯤 일본에서 데드스탁으로 찾은 90년대 아르마니 익스체인지 크롭 기장의 개버딘 슬랙스예요. 아... 원단 얘기 좀 해도 될까요. 개버딘이라고 하면 다들 버버리 트렌치코트 떠올리실 텐데, 이 바지는 진짜 놀라울 정도로 가벼운 개버딘 면 소재거든요. 우븐 특유의 바스락거리는 텐션은 있는데 두께가 얇아서 다리에 감기는 느낌 없이 공기가 통하는 게 느껴져요. 한여름에는 솔직히 좀 더워서 못 입고, 바로 지금 같은 환절기에 딱이에요.

문제는 윗옷인데... 저는 주로 두 가지 방향으로 입어봤어요. 하나는 작년 맵시에서도 어떤 분이 올리셨던, 오버사이즈 린넨 셔츠를 아예 풀어헤치고 입는 거예요. 크롭 팬츠가 다리를 짧아 보이게 할까 봐 부담스러워하시는 분들도 계시던데, 상의의 볼륨감을 극단적으로 키워서 실루엣을 아예 '위는 넓게 아래는 좁게'로 가져가면 오히려 발목이 강조되면서 슬림해 보이는 효과가 있더라고요. 다만 린넨 셔츠는, 제가 예전에 어디선가 얘기한 것 같은데 오트밀이나 내추럴 계열 색상은 어깨 라인이 금방 흐트러질 수 있어서 저는 차콜 그레이에 가까운 짙은 색 린넨으로 골랐어요. 빛에 따라 약간 실크처럼 은은한 광택이 도는 걸로.

다른 하나는, 요새 저녁엔 제법 쌀쌀해서리... 캐시미어 카디건을 걸치는 건데 이게 진짜 조심해야 해요. 크롭 팬츠에 두꺼운 니트를 입으면 상체가 무거워져서 밸런스가 순식간에 무너져요. 그래서 저는 70년대 스코틀랜드제 빈티지 카디건 중에 정말 얇게, 언더웨어처럼 짠 1ply 캐시미어를 골라 입어요. 어깨에 살짝 걸쳤을 때 주름이 생길 정도로 유연한 게, 개버딘 슬랙스의 각 잡힌 라인과 대비되면서 꽤 괜찮은 긴장감이 생기더라고요. 여기에 가죽 벨트 대신 실크 트윌리 스카프를 허리에 한 번 둘러서 매듭을 옆으로 빼주면, 허리선이 좀 더 또렷해지면서도 너무 정장스럽지 않게 풀리는 느낌이에요.

신발은... 아, 이게 정말 고민이었어요. 양말이 보이느냐 마느냐의 문제라서요. 로퍼를 맨발에 신으면 제일 이상적인데, 한 시간만 걸어도 발뒤꿈치가 아작나는 체질이라 포기했고요. 결국 얇은 리브 니트 삭스를 신고 페니 로퍼를 신거나, 아니면 아예 컨버스 잭퍼셀 1970s 빈티지 라인으로 캐주얼하게 빼버려요. 후자는 뉴발란스보다도 발목이 훨씬 슬림하게 잡혀서 크롭 팬츠 끝단이 헐렁해 보이지 않게 해주더라고요.

밤에 외출할 일 있으신 분들은 한 번 시도해보세요. 낮에 입었던 린넨 셔츠 그대로 두고, 가방에 얇은 캐시미어 하나만 챙기면 해 질 녘부터 충분히 분위기 달라져요. 저는 오늘도 그렇게 입고 한남동 골목 돌아다녔는데 바람 불 때마다 발목이 시원해서 기분 좋더라고요. 다만 개버딘 슬랙스는 앉았다 일어나면 무릎 부분에 가로 주름이 좀 생기는 편이라, 신경 쓰이시는 분들은 울 혼방 쪽으로 알아보시는 게 나을 거예요.

다들 이 애매한 계절, 크롭 팬츠 어떻게 매치하시는지 궁금하네요. 저는 일단 이 조합으로 한 달은 더 버틸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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