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착장
비오는 날, 무릎 위 레더 부츠를 꺼낸 이유
비가 좀 추적추적 오는 날이면 신발장 제일 안쪽에 모셔둔 무릎 위 레더 부츠를 무조건 꺼내게 된다. 오늘 딱 그날임.
평소엔 그냥 블랙 스트레이트 팬츠에 첼시 부츠 이런 조합으로 끝내거든. 깔끔하게 블랙 쭉 떨어지는 라인이 질리지가 않아서. 근데 비 오는 날 팬츠 밑단이 젖는 게 너무 거슬려서, 차라리 스커트나 숏팬츠에 롱부츠를 매치하게 되더라. 오늘은 거기에 꽂혔음.
톤 잡은 건 단순해. 메인은 딥 차콜 니트 원피스. 품이 좀 넉넉한데 무릎 위로 한 15센티 정도 오는 기장이라 다리 노출이 꽤 되는 편이거든. 여기에 블랙 무릎 위 레더 부츠를 신으니까 그 빈 공간이 부츠의 매트한 질감으로 딱 채워지는 느낌. 허벅지 중간 정도까지만 올라오는 부츠라 노출 라인이 너무 짧지도 않고, 무릎 덮는 부츠처럼 답답하게 끊기지도 않음. 이 기장이 은근 진짜 중요하더라. 한 끗 차이로 비율이 확 갈림.
아우터는 좀 크게 나온 숄더 패드 없는 블랙 코트를 걸침. 드롭 숄더도 아니고 그렇다고 딱 정해진 어깨 라인도 아닌 그냥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실루엣. 코트 품이 넉넉하니까 타이트한 부츠랑 대비되면서 위는 살짝 무너지고 아래는 정리돼 보이는 그런 느낌. 무채색만 입으니까 이 디테일로 승부 보는 맛이 있음.
악세서리는 귀찮아서 안 했고, 가방은 그냥 작은 블랙 레더 숄더백을 코트 안쪽으로 크로스로 맴. 겉으로 안 보이게. 굳이 드러낼 필요 없으니까.
핏 얘기 좀 하자면, 이 조합은 키보다는 다리 라인이랑 부츠 굵기의 균형이 더 중요한 것 같음. 부츠 쉐프트가 너무 넓으면 다리가 둥둥 떠 보여서 오히려 다리가 짧아 보이는 경우가 있거든. 그래서 난 살짝 타이트하게 종아리부터 허벅지까지 잡아주는 라인으로 정착했음. 오래 걸으면 힘들긴 한데 뭐 예쁜 게 최고니까.
오늘 이렇게 입고 나갔더니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혼자 만족함. 비 오는 회색 하늘, 젖은 아스팔트 바닥, 거기에 올블랙 코디. 이 맛에 장마철도 나름 괜찮다고 생각하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