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착장
요즘 놈코어 다시 보게 되는 이유가 참 많은 하루네요
안녕하세요 에디터의옷장입니다. 오늘은 진짜 오랜만에 놈코어 무드 제대로 내면서 외출했는데, 이거 생각보다 말로 설명하려니까 되게 애매하더라고요 ㅋㅋㅋㅋ 입은 사람은 편하고 보는 사람은 심심할 수도 있는 그 경계선이 놈코어의 묘미인 것 같아서, 오늘 착장 푸는 김에 놈코어라는 단어 자체에 대한 잡생각도 같이 풀어볼게요.
일단 오늘 입은 조합은 이렇습니다.
- 아웃포켓 없는 쿨톤 베이지 코튼 카라 셔츠, 약간 오버사이즈
- 톤 다운된 진청 빈티지 데님, 핏은 살짝 릴렉스드 스트레이트로 세탁 수십 번 한 것처럼 색 빠진 것
- 흰 양말
- 블랙 레더 로퍼
- 액세서리는 아예 없고요, 시계도 오늘은 안 찼어요
이게 다에요. 진짜 말 그대로 옷만 걸친 수준인데, 거울 보면서 느낀 건 '이게 은근히 무신경해 보이지 않으려면 텍스처랑 톤 배합이 진짜 중요하구나' 하는 거였어요. 놈코어라는 트렌드 자체가 2010년대 초중반쯤에 뉴욕에서 처음 회자되기 시작했잖아요. 당시에는 '보통 옷'의 미학, 즉 평범함을 의도적으로 선택하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패션 선언처럼 읽혔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시절 놈코어는 좀 아이러니컬한 지점이 있었어요. 평범해 보이려고 일부러 더 신경 쓰는 기분이랄까.
근데 요즘 다시 부상하는 놈코어는 조금 다른 결인 것 같아요. 작년부터 이어진 고프코어나 블록코어 영향으로 유틸리티 감성이 다 옷장에 깔려 있는 상태잖아요. 그러다 보니 진짜로 기능 좋은 기본템들로만 구성해도 옷이 어느 정도 완성되는 베이스가 깔렸고, 거기에 '억지로 꾸미지 않는 태도'가 더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느낌이에요. 그러니까 옛날 놈코어가 의도된 평범함이었다면, 지금은 걍 진심으로 편한 옷을 입는 무드로 진화한 거죠. 이 차이 되게 미묘한데 체감상 꽤 커요.
다시 오늘 착장 얘기로 돌아와서, 베이지 셔츠랑 진청 데님 조합 자체는 정말 흔하디흔한 건데 이걸 놈코어로 읽히게 만든 포인트가 몇 개 있어요.
첫 번째는 실루엣이에요. 보통 데님에 셔츠 입으면 밑단을 넣어 입거나 벨트로 포인트를 주는 게 일반적인데, 저는 셔츠를 그냥 밖으로 빼서 팬츠 위에 자연스럽게 떨어뜨렸어요. 대신 셔츠가 몸에 붙지 않고 바람 통할 정도로 여유 있는 핏이라, 아래로 떨어지는 라인이 뚝 떨어지지 않고 살짝 A라인 비스무리하게 퍼지는 느낌이 나요. 이게 진짜 중요한 게, 너무 박시하기만 하면 그냥 큰 옷 입은 사람 되고, 적당한 공기층이 있어야 무심한 맛이 살거든요. 여기에 데님도 무릎부터 밑단까지 폭이 일정하게 떨어지는 릴렉스드 스트레이트라서, 전체적인 실루엣이 일자로 툭 떨어지면서도 발목 위에서 살짝 끊기는 정도.
두 번째는 소재랑 컬러 톤의 차이를 거의 없앴다는 점이에요. 색만 보면 베이지랑 진청이니까 대비가 좀 있지 않냐 싶은데, 둘 다 톤이 상당히 죽어 있어요. 베이지 셔츠는 약간 그레이가 섞인 듯한 쿨 베이지라서 따뜻해 보이지 않고, 진청 데님은 거의 회색에 가까울 정도로 워싱이 많이 된 톤이라 이 둘이 만나면 전체적으로 뿌연 색감의 덩어리가 되는 느낌. 그래서 실루엣도 심플한데 컬러까지 차분하니까 진짜 꾸민 티가 1도 안 나는 거예요. 대신 이 상태에서 블랙 로퍼를 신은 건 꽤 의도적인 선택이었어요. 흰 양말이랑 블랙 로퍼의 대비가 발목에서 유일하게 딱 끊어주는 포인트가 되면서, 전체적으로 무기력해 보일 수 있는 실루엣에 아주 살짝 긴장감을 줬거든요. 이런 사소한 긴장 하나쯤은 놔둬야 옷을 입은 사람처럼 보이는 법이니까.
그리고 액세서리를 아예 안 한 것도 오늘은 좀 의미 있는 선택이었어요. 가방도 블랙 캔버스 토트, 그것도 진짜 로고고 나발이고 없는 그냥 무지 토트백 들었고요. 사실 놈코어에서 액세서리 배제는 거의 필수 요소인데, 이게 말이 쉽지 아무것도 안 하면 또 허전해 보일까 봐 손이 근질근질하거든요. 저만 그래요? ㅋㅋㅋㅋ 평소에 반지 여러 개 끼는 편인데 오늘은 그냥 과감하게 다 빼니까 오히려 해방감 같은 게 있더라고요. 꾸미지 않을 자유랄까. 이런 기분을 즐기는 게 진짜 놈코어의 핵심 아닌가 싶어요.
여담인데 놈코어가 다시 보이는 이유 중 하나가, 명품 브랜드들이 로고 플레이를 줄이고 있는 흐름이랑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아요. 최근 몇 시즌 컬렉션 보면 진짜 브랜드 이름 안 적혀 있으면 어디 건지 모를 정도로 절제된 디자인이 많잖아요. 대중의 시선에서도 이제 눈에 띄게 명품인 게 좀 부담스러워지는 시기인 거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정말 기본에 충실한 옷들로 눈이 돌아가는 흐름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 기본이라는 게 의외로 가장 찾기 어려운 옷이기도 하고요. 완벽한 기본 셔츠 하나 사려고 열 개 브랜드 다 뒤지는 게 놈코어 덕후들의 숙명이에요 ㅋㅋㅋㅋ
아무튼 오늘 착장으로 돌아와서, 놈코어를 시도해보고 싶은 분들께 제일 드리고 싶은 말은 "일단 다 빼보세요" 예요. 레이어드도, 눈에 띄는 주얼리도, 컬러 포인트도 다 걷어내고 정말 입고 싶어서 입는 옷 두세 개만 걸쳐보는 거. 그러면 내가 평소에 옷을 얼마나 액세서리나 레이어드에 기대서 입었는지 체감하게 되고, 거기서부터 진짜 자기 스타일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이게 아마 놈코어가 패션을 이미 어느 정도 해본 사람들한테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일 거예요. 다시 돌아가기 어려운 지점이기도 하고.
그럼 다들 즐거운 저녁 보내시고, 내일은 또 어떤 기본템을 꺼낼지 고민해봐야겠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