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착장
소재만으로 완성되는 브이넥 니트, 빈티지와 럭셔리 그 사이 어딘가
요즘 환절기라 그런지 아침저녁으로 옷장 앞에서 한참 서 있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결국 손이 가는 건 매년 이맘때면 꺼내 입는 브이넥 니트 하나인데... 진짜 이 녀석 하나로 가을 초입부터 겨울 레이어드까지 해 먹고 있습니다.
제가 이번에 코디한 건 좀 깊게 파인 브이넥에 7부 소매 캐시미어 혼방 니트인데, 사실 이 정도 깊이감이면 이너를 뭘 하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확 달라져요. 저는 여기에 90년대 이탈리안 실크 블라우스를 안에 받쳐 입었습니다. 칼라 부분에 수작업으로 레이스 자수 들어간 거라 겉으로 살짝 보이는 정도만으로도 꽤 우아한 디테일이 살거든요. 여기서 중요한 건 브이넥 니트가 너무 두꺼우면 실크 블라우스의 그 부들거리는 질감이 묻혀 버리니까 캐시미어 70% 이상에 약간 드레이프감이 도는 정도의 두께감이 딱 좋습니다.
하의는 요즘 제가 진짜 잘 빼입고 다니는 브라운 스웨이드 A라인 미디스커트 매치했구요. 연식 있는 건데 안감까지 실크로 대서 입었을 때 착 달라붙지 않고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게 진짜 고급스러움이 이런 거구나 싶어요. 신발은 로퍼나 옥스포드 슈즈면 무난할 수 있는데 저는 발등 덮이는 홀스빗 디테일 들어간 앵클 부츠로 살짝 무게감 줬어요. 굽은 3센치 정도라 걷기도 편하고 스웨이드 소재에 코 부분만 살짝 광택 도는 게 은근 빈티지 무드 잘 살아요. 가방은 제 최애 하프문 숄더백에 트윌리 묶어서 살짝 차별화 줬구요.
사실 브이넥 니트의 가장 큰 매력은 목부터 데콜테 라인까지의 빈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이 공간을 어떻게 채우느냐에 따라 착장의 완성도가 달라지는데, 저는 요즘 진주 포인트 들어간 빈티지 브로치로 허전함을 잡는 편입니다. 모양이 크지도 않고 은은하게 톤다운된 담수 진주라서 부담 없고요. 여기에 얇은 14k 체인 목걸이 하나 더해서 은근슬쩍 레이어드하니까 진짜 '맵시' 있더라고요...
색감 얘기하자면 저는 브이넥 니트는 차콜이나 다크 카멜, 아니면 아이보리 계열로 하나씩 꼭 있어야 된다고 봅니다. 차콜은 진짜 실패할 확률 제로고, 카멜은 같은 톤의 브라운 계열 하의 만나면 진짜 귀티가 장난 아니에요. 이번에 입은 건 차콜에 가까운 멜란지 그레이였는데 실크 블라우스가 아이보리빛 살짝 도니까 갑갑하지 않고 오히려 얼굴 주변을 환하게 살려주더라고요.
아, 그리고 한 가지 팁이라면 브이넥 니트 보관할 때 절대 행거에 걸지 마세요. 저도 예전에 명품이라도 목늘어남 앞에선 답 없다는 거 여러 번 느끼고 나서 니트류는 다 접어서 수납합니다. 특히 캐시미어 혼방은 어깨 라인도 무게에 변형 오니까 종류 불문하고 접어 보관하는 걸 진짜 강추드려요. 지금 입고 있는 이 녀석도 한 3년째 접어서 보관 중인데 아직도 브이넥 라인이 칼같이 살아 있어요.
오늘 코디 사진은 못 찍었는데... 진짜 거울 앞에서 한참 서서 이리저리 보고 괜찮다 싶어서 글로나마 공유해봅니다. 다들 브이넥 니트 하나씩은 장롱에 모셔두고 계시죠? 소재 좋은 걸로 하나 장만해두면 진짜 몇 년을 질리지 않고 입는 것 같아요. 오히려 연식 생길수록 더 멋스러운 게 이 녀석들의 매력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