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맵시

오늘의 착장

아방가르드는 내 맘대로 정의하는 거니까, 이 코디도 그런 마음으로.

에디터의옷장·1시간 전·조회 35

오늘의 착장 올려봅니다. 사실 ‘아방가르드’라는 단어를 의식하고 입은 건 아니고, 아침에 옷장 앞에 서서 그냥 ‘오늘은 좀 다르게 입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매번 비슷한 실루엣, 비슷한 색 조합만 반복하는 느낌이라 뭔가 규칙을 깨보고 싶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나온 게 이 코디인데, 찍어놓고 보니 확실히 평소보다 실험적인 무드가 나왔더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아방가르드라고 스스로 이름 붙이기로 했습니다. 원래 아방가르드라는 게 시대를 앞서간다거나 파격적인 시도를 뜻하니까, 대중적인 코디 문법에서 살짝 비켜나 있으면 그게 나름의 아방가르드 아니겠어요.

  • 아우터는 뒷판이 긴 언밸런스 기장의 블랙 코트를 골랐어요. 앞은 허리선 정도에서 끝나고 뒤는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디자인인데, 이거 하나만 걸쳐도 전체적인 실루엣이 굉장히 비대칭적이고 조형적으로 잡혀요. 소매도 살짝 오버해서 떨어뜨리는 디자인이라 전형적인 테일러드 코트에서 기대하는 정돈된 느낌은 전혀 없고, 오히려 무언가 완성되지 않은 듯한 어색함이 재미있는 옷이에요. 이 어색함이 아방가르드 무드의 포인트라고 생각해서 자주 꺼내 입는 편입니다.

  • 이너는 과감하게 네온 오렌지 컬러의 얇은 터틀넥이에요. 원래 코트가 완전 블랙이라 뭘 받쳐도 무난하게 넘어가는데, 굳이 이런 형광기에 가까운 색을 넣은 이유는 의도적으로 불협화음을 내고 싶었거든요. 블랙 앤 화이트의 절제된 팔레트를 좋아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거의 반발심 수준일 수 있는데, 실제로 입어보면 톤은 완전히 충돌하면서도 터틀넥 특유의 텍스타일이 차분해서 이상하게 균형이 잡히긴 하더라고요. 색의 긴장감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것도 아방가르드에서 자주 눈에 띄는 연출이라 참고했어요.

  • 보텀은 프론트에 큰 턱이 두 개 들어간 와이드 슬랙스인데, 이게 진짜 편하고 예뻐요. 허리는 하이웨이스트에 가깝고 밑단으로 갈수록 살짝 통이 줄어드는 캐롯 핏인데, 옆에서 보면 엉덩이와 허벅지 라인이 좀 과장돼 보여요. 저는 이런 형태가 오히려 실루엣에 재미를 더해준다고 생각하는데, 보통 여성복에서는 다리를 길고 슬림하게 보이려는 패턴이 많잖아요? 근데 이 팬츠는 그런 의도를 완전히 배제해서 입으면 입을수록 볼륨감 자체를 있는 그대로 즐기게 되더라고요. 제가 하체가 살짝 통통한 편이라 보통 이런 바지는 부담스러워하는 분들 많은 거 아는데, 의외로 저는 이렇게 볼륨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과장하는 쪽이 마음이 편했어요. 체형 커버라는 게 꼭 숨기는 것만이 아니라, 그냥 내 실루엣 자체를 새롭게 디자인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선택지가 훨씬 넓어지거든요.

  • 슈즈는 디스트로이드 느낌의 메탈릭 실버 로퍼. 디스트로이드라고 하면 거창한데 그냥 앞코가 심하게 까진 디자인이고, 은색이라 빛 반사가 꽤 강해요. 발등에서부터 빛이 번쩍이니까 무채색의 단조로움도 깨지고, 생각보다 발이 길어 보이는 착시도 생기더라고요. 원래 아방가르드룩에서 신발은 좀 괴상한 걸 고르는 게 좋다고 해야 하나, 너무 말끔하면 앞의 시도들이 다 반감되니까 이 정도는 해줘야 전체 톤이 맞는 느낌이에요. 참고로 로퍼는 뒤꿈치에 깔창 하나 넣고 신으니까 확실히 발목 라인이 깔끔하게 올라와서, 바지 밑단이 약간 짧게 떨어져도 다리가 잘려 보이지 않고 좋더라고요.

  • 악세서리는 미니멀하게 목에 둘러 맨 네온 오렌지 컬러의 얇은 스카프 하나만. 터틀넥과 정확히 같은 색이라 의도한 매칭인 건 금방 눈치채실 텐데, 이게 은근히 코트 깃 사이에서 포인트로 작용해 줘서 얼굴 주변이 확 밝아져요. 이런 매치가 좀 해외 스트리트 스냅 감성 같기도 하고, 실제로 예전에 매거진 일할 때 파리 컬렉션 스트리트에서 비슷하게 목에만 강렬한 컬러로 포인트 주는 룩을 보고 꽂혀서 따라 해본 건데 의외로 국내에서도 그렇게 튀지 않더라고요.

오늘처럼 해체적이고 실험적인 조합은 솔직히 아침에 정신없을 때는 잘 안 되거든요. 근데 한 번씩 이렇게 마음먹고 입고 나가면, 거울 볼 때마다 ‘아 내가 이런 사람이었지’ 싶은 기분이 들어요. 옷이라는 게 결국 내 안의 어떤 태도를 밖으로 꺼내는 도구라면, 아방가르드는 그 태도를 가장 솔직하게 보여주는 장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누군가는 이상하게 볼 수도 있지만, 그거야 뭐 저만 즐거우면 된 거 아니겠어요. 다들 가끔은 규칙을 깨는 마음으로 옷 입어보시길. 오늘의 착장은 여기까지예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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