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맵시

오늘의 착장

오늘은 셀비지 데님과 60년대 헌팅 재킷으로 가볍게

빈티지록셔리·9시간 전·조회 24

날씨가 제법 선선해져서 드디어 이 녀석을 꺼냈네요. 장롱 깊숙이 모스볼 넣고 보관해뒀던 60년대 말쯤으로 추정되는 바버 인터내셔널 A7 헌팅 재킷. 정확한 연식은 단정짓기 어려운데, 안감 체크 무늬랑 지퍼풀 형태 보니까 초기 그린 왁스 코튼에서 살짝 넘어온 과도기쯤 된 것 같아요. 왁스 먹은 표면이 세월을 타면서 단단한 광택이 죽고 크레이징이 잔뜩 일어나서 거의 스웨이드 같은 질감으로 바뀐 게 진짜 보물이거든요. 이건 인위적으로 못 만드는 거라서요...

이너는 그냥 가장 기본에 충실한 메리노 울 니트 크루넥. 올드 스쿨 아메카지에서는 결국 레이어링에서 승부 봐야 하니까, 겉감이 왁스로 좀 빳빳한 편이니까 안쪽은 최대한 얇고 유연하게 페더급 메리노로 골랐어요. 컬러는 짙은 코코아 브라운인데, 이게 재킷의 올리브 톤이랑 받쳐주면서도 톤온톤으로 안 묻히는 절묘한 경계를 유지하더라고요. 여기서 흰 티셔츠 목 부분을 1.5cm 정도만 살짝 빼내니까 숨통 트이는 느낌 들었습니다. 이 작은 디테일 하느냐 안 하느냐로 전체 인상이 나이 든 사람처럼 경직되느냐, 그냥 클래식하게 즐기는 사람이냐 갈리는 것 같아요.

하의는... 진짜 오래 입은 리얼 맥코이즈 lot.001XX 셀비지 데님. 벌써 허벅지 부분 워싱이 거의 하얗게 색이 빠져서 바지의 역사가 고스란히 보이는 상태인데, 오늘처럼 발목을 두 번 정도 접어서 일본 셀비지 특유의 붉은 라인 살짝 보이게 스트레이트로 떨어뜨렸어요. 요즘 와이드가 대세라고들 하지만, 저처럼 체형이 호리호리한 편이라면 오히려 40년대 레플리카 계열의 슬림 스트레이트 핏이 수직 실루엣을 살려줘서 더 믿음직스러운 아웃핏이 나오는 것 같아요. 바지통 넓은 것만이 정답은 아니니까... 본인 체형에 맞춰서 실루엣 선택하시는 게 맞다고 봐요.

슈즈는 러셀 모카신의 헌트 부츠, 피칸 브라운 물들인 가죽이에요. 원래는 사파리 부츠로 나온 건데, 저는 끈을 좀 더 얇고 긴 레더 레이스로 바꿔서 발목 위로 두 번 감아 묶는 스타일로 커스텀해서 신고 있어요. 이러면 갑피 전체가 발목을 좀 더 타이트하게 잡아줘서 데님 핏이 더 깔끔하게 떨어지고, 걸을 때 바지단이 부츠 위에서 걸리적거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쓸리거든요. 이 브랜드 정말 오래 신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처음 3개월은 발바닥이 고문이지만 일단 길들이면 내 발 모양대로 자국이 나면서 완전히 달라붙어요. 지금은 거의 슬리퍼처럼 편하네요.

아 그리고 액세서리... 빈티지 시계 좋아하시는 분들 많으실 텐데, 저는 정장용이 아닌 아메카지 무드에는 깔끔한 필드 워치 계열이 딱이라고 생각해서 오늘은 70년대 해밀턴 카키 메커니컬을 올려줬어요. 돔형 아크릴 글라스에 미세하게 금 간 스크래치들이 오히려 빛 받으면 뿌옇게 번지면서, 왁스 먹인 재킷의 질감이랑 절묘하게 어우러지더라고요. 스트랩도 원판 나토에서 탈색이 덜 된 올리브 드레이크 나토 밴드로 바꿨는데, 색 바랜 재킷이랑 톤 맞추려고 일부러 찾은 매물이라 애착이 갑니다.

아메카지 하면 뭔가 무조건 러기드하고 거친 방향으로만 가시는 분들도 계신데, 저는 소재 본연의 노화된 결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핏으로 정갈하게 떨어뜨리는 걸 더 좋아해서 오늘은 전체적으로 그런 톤으로 맞춰봤어요. 역시 이런 날씨에 퇴근길에 에일 한 잔 마시면서 걷기 딱 좋은 조합이네요. 다들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고, 애정하는 빈티지 피스들 꺼내서 슬슬 행복한 고민들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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