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착장
오늘은 좀 다르게, 코티지코어 무드로 입어봤습니다
사실 저는 평소에 올드머니나 헤리티지 워크웨어 계열을 주로 다루는 사람이라 이쪽 계열은 거의 처음 올려보네요. 요새 날도 슬슬 풀리고 바람만 좀 선선해져서 그런지 문득 시골집 다락방 같은 무드가 끌리더군요. 그러니까 그 특유의 코티지코어, 대놓고 전원풍으로 꾸미기보다 은은하게 스며드는 정도로만 풀어보고 싶었습니다.
-
아우터는 몇 년 전에 우연히 득템한 빈티지 리넨 블렌드 롱 원피스인데, 원피스라고 하기엔 앞이 트여 있어서 실내에선 가디건처럼도 걸칠 수 있는 애매한 디자인이에요. 태그 보니까 70년대 영국 어느 작은 타운에서 만든 핸드메이드 제품 같더군요. 리넨이 오래될수록 부드러워지는 걸 확실히 보여주는 케이스인데, 까슬함이 거의 사라지고 캐시미어도 아닌 게 살짝 윤기가 도는 그런 감촉이에요. 원래는 내추럴 린넨 색이었을 텐데 지금은 거의 아이보리 + 옅은 차 끓인 물색으로 변했고, 가슴둘레 쪽에만 엠브로이더리로 작은 들꽃 패턴이 수놓아져 있어요. 기계자수가 아니라 손자수라 실의 굵기가 불규칙한 게 오히려 입체감이 있더군요.
-
속에는 에이징이 곱게 먹은 경면 실크 블라우스를 받쳐입었는데, 이건 작년에 일본 야후옥션 대리로 들인 거라 연식은 아마 90년대 초일 거예요. 칼라는 약간 둥글게 파인 피터팬 칼라인데 요즘 나오는 깔끔한 것과 달리 칼라 끝이 살짝 말려 올라가는 디테일이 있어요. 실크 자체도 광택이 대놓고 반짝이지 않는 쪽이라서 햇빛 아래서 보면 진주조개 안쪽 같은 은은한 빛이 돌아요. 원피스랑 겹쳐 입으니까 서로 다른 흰색 톤이 섞여서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층이 져 보이더군요.
-
아래는 일부러 바지는 배제했고 대신 오래된 프렌치 린넨으로 만든 페티코트 스타일의 속치마 비슷한 걸 꺼냈습니다. 이건 작년에 파리 마레 지구의 작은 브로카트에서 구한 건데 만든 지 30년은 족히 넘은 물건이라 허리 밴드 부분이 약간 늘어나 있어요. 대신 그 늘어짐이 오히려 실루엣을 너무 타이트하게 잡지 않아서 무심하게 걸친 느낌이 나고, 걷거나 앉을 때 린넨 특유의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기분 좋더군요. 길이는 복숭아뼈 위로 약간 올라오는 정도라 발목 양말 정도만 살짝 보여줘도 괜찮았어요. 오늘은 무릎 밑까지 오는 면 리브 삭스를 신었는데 이것도 몇 년 신어서 리브가 헐거워진 걸 오히려 의도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게 신었습니다.
-
신발은 생각보다 고민을 좀 했는데, 결국 빈티지 레더 플랫 슈즈를 꺼내들었어요. 80년대 이탈리아제인데 가죽이 완전히 길들여져서 발등을 감싸는 곡선이 마치 내 발 모양대로 주물럭거린 듯 자연스러워요. 버건디와 브라운 경계쯤 되는 깊은 색감이라 전체적으로 밝은 톤의 착장에 무게를 살짝 잡아주는 역할을 하더군요. 플랫이라 걷기 편하고, 무엇보다 신발 끈 대신 가죽 끈을 한 번 꼬아서 묶는 디테일이 디자인적으로도 귀여운 포인트였어요.
-
액세서리는 절제했어요. 코티지코어는 과하게 주렁주렁 달면 금방 촌스러워지더라고요. 손목에는 어머니께 물려받은 빈티지 페블드 레더 밴드 시계, 얼굴 화이트 에나멜 다이얼에 로마 숫자 인덱스라 드레스 워치에 가깝죠. 귀걸이는 착용하지 않았고 대신 빈티지 린넨 손수건을 접어서 작은 토트백 안쪽에 살짝 걸쳐 넣었어요. 지난주에 장날 벼룩시장에서 집어온 것인데, 모서리에 누군가가 이니셜을 바늘로 수놓은 흔적이 있어서 꽤 애착이 갑니다. 스멜은 약간 오래된 목재 서랍 냄새 비슷한 게 나서, 일부러 아직 세탁 안 하고 며칠 바람만 쐬어 쓰고 있어요.
전체적으로 실루엣은 A라인에 가깝게 떨어졌는데, 허리를 강하게 잡지 않았기 때문에 딱 편안한 전원 드레스 무드가 나왔더군요. 제 체형이 어깨가 좁고 골반이 약간 있는 편이라 이런 실루엣이 오히려 과하지 않게 받쳐져서 마음에 들었어요. 평소 같았으면 여기에 벨트로 포인트를 줬겠지만 오늘은 의도적으로 풀어봤습니다. 옷에 향수 살짝 뿌려두는 게 은은한 포인트 되더군요, 동감합니다. 저도 오늘은 장미 기반에 약간 스모키한 베이스가 섞인 걸 손목 안쪽과 원피스 안감에 한 번만 톡 뿌렸어요. 바람 불 때마다 은은하게 올라오는 정도라 과하지 않았습니다.
사진을 올리고 싶은데 폰카 성능이 요즘 좀 말썽이라 글로만 풀어내자면 이런 기분이었네요. 가끔은 평소 스타일에서 벗어나서 이런 무드를 시도해보는 것도 꽤 즐거운 일이더군요. 요새 날씨에도 잘 맞고, 카페 테라스보다는 오히려 동네 작은 식물원이나 한적한 책방에 가면 더 어울릴 것 같은 착장이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맵시 여러분도 종종 본인만의 코티지코어 무드 풀어보시길.